[특파원 리포트] 장쩌민의 여유 잃어버린 中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2022. 12.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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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록밴드를 맞이하고 있다./웨이보 캡처

일본 유명 록밴드 글레이(GLAY)는 2002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초대를 받아 베이징 중난하이 집무실을 방문했다. 멤버 4명 중 2명이 장발, 2명이 금발이었다. 일본 측 인사가 “노랑 머리 일본인을 보신 건 처음이지요?”라고 하자 장 전 주석은 “이런 스타일도 꽤 괜찮네”라고 답했다. 선물로 전달한 기타도 활짝 웃으면서 받았다. 지난달 베이징 특파원으로 와서 장쩌민이 글레이와 찍은 사진을 중국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6일 오전 엄수된 장쩌민 추도 대회에서 가장 크게 슬퍼한 이들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이었다. 장쩌민은 재임 시절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 풍토를 조성했던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중국이 ‘문화 자강’을 외치며 문화·예술 통제를 강화하자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 지난달 28일 베이징 시위 현장에서 만난 영화 산업 종사자는 “지난 3년간 이어진 ‘제로 코로나’와 강도 높은 검열 때문에 중국의 문화 산업은 고사 직전”이라고 했다.

장쩌민은 1998년 중국에서 미국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되자 정치국원들에게 단체 관람을 제안했다. 그는 “자본주의라고 해서 사상 교류를 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니다”라며 “이 영화는 돈과 사랑, 빈과 부의 관계, 위기 속 개인들을 조명한다”고 했다. 그의 재임 시기에 한국 아이돌그룹 H.O.T., 배우 안재욱, 가수 이정현 등이 중국에서 최초의 한류를 일으켰다. 2001년에는 장쩌민이 합창단을 지휘하는 모습이 각국에서 전파를 탔는데 이 합창단의 단원들은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 등 당시 권력 정점에 있던 정치인들이었다.

당시에도 미·중 관계는 험난했지만, 문화·예술을 이용해 부드럽게 풀고자 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공동으로 악단을 지휘하고, 색소폰과 중국 전통악기 얼후(二胡)에 대해 논했다. 1997년 하와이 호놀룰루 방문 때는 바깥에서 반중 시위대의 함성이 들려오자 연설을 멈추고 ‘알로하오에’를 기타로 연주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영국 BBC 방송은 “장쩌민은 문화적 소양이 가장 높았던 지도자”라며 “서방과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도 장쩌민 시대였다”고 했다.

장쩌민 전 주석이 국내에 외국 문화를 들여오고, 국외에 ‘전랑 외교’ 대신 ‘문화 외교’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중국은 지금에 비해 경제 규모는 작았지만 빠르게 팽창하고 있었고, 성장의 기회만 보장받는다면 국제사회의 협상 요구에 얼마든지 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닫는 대신 노래하고 연주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웃으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날이 다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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