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나를 바꾸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2022. 12.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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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4세는 앞장서서 개종했고 明治유신 세력도 먼저 칼 버려
참된 개혁은 자신부터 바꾸는 것… 방송법 개정, 이런 선례 따라야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정청래 위원장의 방송법 개정안 관련 찬반 토론 종료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개혁(改革)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이다. 권력을 새로 쥔 자치고 이 말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실제로 한 일은 옛 사람 쳐내거나 내게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전 권력이 누리던 특권이 있다면 제도는 그대로 둔 채 누리는 사람만 바꿔치기했다. 그런 개혁치고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사례가 드물다.

역사에 성공한 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꿔야 할 대상을 사람보다 제도에 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누구에게 적용하는가’였다. 성공한 많은 개혁가가 바뀐 제도를 자신들에게 먼저 적용했다. 그 과정에서 승자로서 누릴 수 있던 특권도 포기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수백 년 권력에서 소외됐던 하급 사무라이들이 떨쳐 일어나 봉건 제도의 상징인 막부(幕府)를 타도한 사건이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유신 세력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막부 인사들을 내쫓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일본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었다. 사무라이에게서 칼을 빼앗은 폐도령(廢刀令)이 대표적인 개혁이었다.

막부 시대 사무라이가 허리에 찬 칼은 특권의 상징이었다. 메이지 정권의 개혁가들은 “일본이 서구와 같은 문명사회로 도약하려면 칼 차고 돌아다니는 악습부터 없애야 한다”며 폐도령을 발동했다. 폐도령을 앞세워 막부 세력의 칼만 빼앗으려 했다면 가짜 개혁으로 끝났을 것이다. 메이지 개혁가들은 자기들부터 칼을 버렸다. “우리 세상이 왔다”며 좋아하던 일부 혁명 동조자들이 “이러려고 정권 잡았느냐”고 반발했지만 밀어붙였다. 그 후 일본은 근대로 진입했다.

16세기 말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개혁 사례가 있었다. 국왕 앙리 4세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낭트칙령’을 선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구교와 신교로 나눠 서로 피를 뿌리던 구태가 고작 법령 하나 도입했다고 사라질 리 없었다. 앙리 4세는 신교도였지만 종교적 관용을 제도로 안착시키기 위해 스스로 개종을 택해 구교도가 됐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대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나라를 개혁하는 정치인의 다짐은 말이나 법령이 아니라 이런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통해 완성된다.

민주당이 이번 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내건 것도 개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정파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을 끊고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국민이 그 말의 진의를 의심한다. 민주당은 그 이유를 깊이 살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마련했던 개혁 법안을 자신들이 집권하자 외면했다가 이제 다시 추진하는 것이 정당한 개혁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이런 지적에서 여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정당들은 그간 공영방송을 정파의 이익 실현 도구로 삼는 행태를 반복했다.

대한민국 공영 방송은 막부 시절 사무라이가 들고 다녔던 칼과 같다. 이 나라 정당들은 정권 잡으면 서로에게서 칼을 빼앗아오는 것에만 몰두했다. 국민에게 방송을 돌려주는 진짜 개혁은 외면했다. 반복되는 이전투구를 중단하려면 공영방송이 누구의 칼도 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공영방송 제도를 아예 없앤다는 각오로 개혁해야 한다. 방송국과 채널 수가 적었던 시절엔 공영방송이 맡아야 했던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그 역할은 급속히 축소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방송법을 개정해 국민에게 돌려줄 생각이라면 지금처럼 의원 수 앞세워 밀어붙여선 안 된다. 어느 정당도 마음대로 공영방송을 주무를 수 없는 방송법을 여야 합의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칼을 버리고, 자신의 종교마저 바꾼 위대한 개혁가들 선례를 따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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