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방탄 민주당’

양권모 기자 2022. 12.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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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권력은 세다. 국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라서만이 아니다. 대선 낙선자로선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명분 약한 당대표 경선에 나서 77.77%의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최고위원과 주요 당직은 ‘친명계’가 완전히 장악했다.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이 큰 강성 팬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실로 야당 대표로서 넘사벽의 지배력을 구축했다. 과거 양김(김영삼·김대중)도 야당 총재 시절 이만한 권력을 누린 적이 없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야당에는 견제와 대안 역할을 하는 비주류가 건재했다. 지금 민주당에는 비주류라 할 세력이 없다. 이 대표는 야권의 언터처블 권력이다.

양권모 편집인

이 대표는 취임 때 표방한 ‘유능하고 강한 정당’을 이끌 자산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의지를 가지면 국회의 권능인 입법과 예산에서 못할 게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입법을 죄다 막을 수도 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 인사도 민주당의 문턱을 넘어야 가능하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작정하면 독자적인 ‘민주당 수정안’을 채택할 수도 있다. 거대 야당과의 타협 없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입법과 예산에서 성과를 낼 방도가 없다.

달리 말하면 거대 야당과의 협치와 대화가 필수지만, 윤 대통령은 애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제1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파상적이고, 윤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지도부와 공식 회동한 적이 없다. 작금의 왕성한 ‘관저 식사 정치’에도 야당의 자리는 아예 없다. 유신정권 시절 박정희 대통령도 정국을 풀기 위해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가졌다. 아무리 정치 문외한인들 국정의 핵심인 입법과 예산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이리 만용을 부리기 힘들다. 협치를 팽개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바로 힘센 ‘이재명 민주당’의 존재다.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야당의 반대와 ‘방탄’ 때문에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구실이 생기는 셈이다. 실상 취임 6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의 법안이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에는 야당의 반대도 있지만, 정부·여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더 근인이다.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준예산’부터 거론하는 정부·여당이다. 아마도 지금 정부·여당에 필요한 것은 국정 목표를 실현할 입법이나 예산이 아니라, 이를 가로막는 거대 야당의 존재다. 협치의 실패와 국정의 부실, 개혁의 실종을 야당의 반대와 ‘방탄’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정(司正) 외에는 통치 동력이 없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이보다 좋은 핑계가 없다.

“윤석열 정권이나 검찰의 정치적 목표는 이재명 제거가 아니라 민주당을 방탄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김종민 의원) 검찰발 ‘사정 정국’의 정곡을 짚는 말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생 정책과 입법, 정부 견제, 실정 비판, 대통령 주변의 심각한 의혹 제기 등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도 ‘방탄’ 프레임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숨만 쉬어도’ 방탄용이라고 몰아세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당한 추궁과 국정조사 요구조차 ‘방탄’으로 씌운다. 진즉 문책했어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문제도 방탄 논란으로 덧칠되게 만들었다. 참사 정국마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맞불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민주당에는 만사휴의다.

‘방탄 정당’의 굴레를 벗지 못하면, 민주당은 더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의 민생 정치와 입법 대안, 정권 견제가 ‘방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엄중함을 모르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기막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상승하는 ‘믿기지 않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방탄 민주당’이 무능하고 뻔뻔한 윤석열 정부를 부조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적대적 공존’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 대표는 엊그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 대신 최고위원회에서 소회를 밝혔다. 아마도 대장동 사건 등 검찰 수사에 대한 답변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마냥 회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 대표 스스로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당을 분리,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너무도 불확실한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 향배에 민주당의 명운을 걸어서는 안 된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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