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 건넨 위로의 힘… ‘불편한 편의점’ 판매 1위

김용출 2022. 12. 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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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출판시장 한국소설 ‘돌풍’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위권에
김호연 등 국내작가 소설 5종 포함돼
침체됐던 한국문학에 ‘희망의 빛줄기’
김훈 ‘하얼빈’·김영하 ‘작별인사’ 선전
이민진 ‘파친코’ 최고의 외국소설 등극

지난해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한국 소설 바람이 올해 국내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비롯해 한국 소설이 교보문고의 2022년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위 안에 무려 5종이나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스타 작가 김훈과 김영하 등의 신작 장편소설 역시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어모으면서 흥행에 가세했다. 국내 작가들의 신간 상당수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면서 한동안 침체했던 한국 문학이 모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희망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K팝이나 K드라마, K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거워 보이지만, 한국 문학 및 작가들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점점 커가는 분위기다. 올해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고, 정보라 작가와 박상영 작가는 노벨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부커상 후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출판계 역시 올해 가장 본원적인 콘텐츠로 꼽히는 한국 문학이 약진한 것에 대해 “좋은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읽어줄 독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독서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상황에서 어두운 바다에 비친 작은 빛줄기 같은 희망을 던져준다”며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한국 소설 바람이 올해 국내 출판계를 강타했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비롯해 한국 소설이 교보문고의 2022년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위 안에 무려 5종이나 올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세계문학상 출신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으로 종합 1위

5일 교보문고 자료에 따르면, 김호연 작가의 대중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소설 분야 1위뿐만 아니라 종합 베스트셀러 전체 1위까지 석권했다. 후속작인 ‘불편한 편의점 2’ 역시 예약판매부터 화제를 모으며 출간과 함께 상위권을 차지, 1권과 2권을 합쳐 밀리언셀러(100만부)에 올랐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전체 2권)’과 ‘아몬드’에 이어서 한국 소설로는 2020년대 들어 세 번째로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작품이 됐다.

국내 대표적인 장편문학상인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출신인 김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청파동의 편의점 올웨이즈(ALWAYS)를 배경으로 야간 알바로 채용된 노숙인 출신 독고가 진상 손님을 쫓아내는 한편 손님과 이웃, 직원들의 사연을 들어주면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충고도 해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고는 주위 사람들과의 이 같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도 회복한다.

김 작가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인기 비결에 대해 “먼저, 스토리가 따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며 “팬데믹 시대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서 불편하지만 우리가 서로 도와서 편해진다는 화두가 잘 통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이 이 글을 쓸 때 힘든 시절이었고, 저 자신부터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따뜻함이나 인간의 선의에 대해 느끼는 바를 썼다”며 “독자들과 소통해보고 싶다는 제 노력이 시대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교보문고는 “‘불편한 편의점’의 성공이 반가운 이유는 셀럽(명사)의 추천도서로 소개되거나,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 명성을 이용한 마케팅 등 기존 베스트셀러 성공법칙을 벗어나 콘텐츠 자체의 힘으로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라며 “마치 변화구 투수들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오랜만에 쨘, 하고 등장한 정통파 강속구 투수의 출현을 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김훈 등 스타 작가의 귀환…공간 모티브 소설도 인기

대중적 인지도와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 작가 김훈과 김영하의 신작 소설도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웅이 아닌 청년 안중근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을 그린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하얼빈’은 지난 8월 출간과 동시에 돌풍을 이어가면서 종합 베스트셀러 3위가 됐다. 예스24는 특히 “‘하얼빈’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설 구매력이 약한 4050 남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김영하 작가가 9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작별인사’도 꾸준한 호평 속에 종합 베스트셀러 5위를 기록했다.

편의점을 비롯해 백화점과 서점 등 공간을 무대로 한 소설도 큰 인기를 끌었다. ‘불편한 편의점’과 함께 이미예 작가의 힐링 판타지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평범한 동네 서점을 찾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도 각각 종합 베스트셀러 7위와 10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는 “이 책들은 공통적으로 따뜻한 일러스트를 표지에 담아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한 독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선전…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장례식 3일간을 딸의 시선으로 해학적으로 그린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선전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의 추천이 흥행에 큰 도움이 됐지만, 기본적으로 작가의 서사적 역량과, 사투리 입말과 유머를 살린 해학적 문체와, 이념에 뒤틀린 한국 현대사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한 묵직한 주제의식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K콘텐츠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작가들의 저력을 확인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 4월 손원평 작가가 ‘서른의 반격’으로 ‘아몬드’에 이어 두 번째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수상한 데 이어, 정보라 작가는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 SF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커상 최종 후보 발표 후 국내 독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저주토끼’는 역주행했다.

올해 최고의 외국소설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였다. 상반기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세계적 흥행을 끌면서, 이미 2018년 첫 출간됐던 원작 소설 ‘파친코’도 한동안 큰 돌풍을 일으켰다.

◆유명 시인 인기 여전…젊은 시인 진은영 돌풍도

시 분야에선 익숙한 스타 시인들의 작품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했다. 널리 사랑받아온 나태주 시인과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류시화 시인, 국민시인 윤동주, 김수영 시인 작품이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김수영 시인의 시집 ‘디 에센셜: 김수영’은 교보문고 단독 상품으로 제작돼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비교적 젊은 시인에 속하는 진은영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출간과 함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시 분야 1위에 오르더니 3주 만에 무려 1만부가 팔려나가는 등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진 시인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애송시 ‘청혼’에 대해 “제 마음의 고통과 더불어, 젊은이들의 빛나는 사랑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며 “특별한 것을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간절한 어떤 사랑의 태도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세이 분야에서는 따뜻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에세이가 꾸준하게 사랑을 받았다. 해외 에세이 중에서는 김영하 작가의 북클럽에 선정된 ‘H마트에서 울다’가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2년 도서 판매(매출 기준)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동안 주춤했던 여행 분야가 50% 가까이 폭증한 반면,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만화 분야는 다시 주춤했다. 특히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면서 경제·경영 분야 도서는 작년 대비 13.7% 줄었고, 그중에서도 주식 도서는 무려 43.8%나 폭락했다. 독서인구 고령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40대 여성 독자의 비중은 24.7%로, 올해도 가장 높았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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