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00] 최종 대부자

차현진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2022. 12. 7. 00:40 수정 2022. 12. 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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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새 총리 리시 수낙은 인도계다. 영국 사회의 비주류라는 점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와 비교된다. 디즈레일리는 유대계였으며, 이름(Disraeli)의 앞뒤 철자를 빼면 이스라엘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42세에 총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수낙은 로버트 젠킨슨과 닮은꼴이다. 젠킨슨은 15년을 재임한, 최장수 총리다. 혈기왕성한 탓인지 유난히 전쟁을 많이 치렀다. 1812년 취임 열흘 만에 미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때 영국군은 식민지에서 이탈한 미국을 혼내주려고 대통령 관저를 불태웠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복구한 다음 흰 페인트를 칠하고 백악관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젠킨슨은 나폴레옹과도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투기가 시작되었다. 남미 개발 붐이었다. 하지만 이내 거품이 꺼지고, 지독한 불황이 시작되었다. 1825년 금융 위기다. 처음에 젠킨슨은 투기꾼의 몰락을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융 위기는 투기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멀쩡한 회사까지 쓰러지고, 경제가 진창에 빠졌다.

절치부심하던 젠킨슨 총리가 일요일 저녁 중앙은행 총재를 관저로 불렀다. 그리고 “지금부터 영란은행 금고에 있는 금이나 법정 화폐 발행한도 따위는 다 잊어버리시오. 일단 돈을 풀어 은행들을 살리시오”라고 지시했다. 그 말을 들은 코넬리우스 불러 총재가 월요일 아침 돈을 풀었다. 그랬더니 그날부터 금융시장 경색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영란은행 스스로도 놀란 그것을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이라고 한다.

3년 뒤인 1828년 12월 4일 젠킨슨이 58세로 사망했다. 젠킨슨은 임기 말에 금융 위기를 맞았지만, 수낙은 취임 초부터 고생하고 있다. 수낙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최종 대부자 기능에 의존할 수 없다. 지금 영국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정부의 절제다. 흔한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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