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만약 '사용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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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동자가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CBS는 노동위원회 법률 대응 과정에서 정규직과 완전히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던 그녀가 프리랜서라고 줄곧 주장했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회사의 주장이 '이유없다'고 결론내렸다.
노동위 심문회의 등에서 그녀를 "정규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미 공언했던 약속을 이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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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동자가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다행히 노동위는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가 부당하니, 즉시 원래의 직으로 복직시키라는 이른바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판단에는 전제가 있었다. 바로 회사가 그동안 ‘프리랜서’로 취급해왔던 그녀가 사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률적 판단이었다. 그러니 입사 당시부터 ‘근로자’라고 판명난 그녀가 돌아갈 자리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일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그녀를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고 근로계약서 작성 요구를 거부했다. 이미 계약 기간이 종료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과거의 프리랜서 계약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황당한 주장도 보탰다. 바로 얼마 전 기독교 방송 CBS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근 다수의 방송 비정규직들이 법률 다툼에서 승소하고 연이어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라는 판정을 받고 근로자로서 방송국으로 복귀했다. 유독 CBS만이 노동위원회 규칙상 ‘원직복직의 정의’를 악의적으로 해석, 상상할 수 없었던 대응에 나섰다. CBS의 비정상적 대응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몇 년간 ‘아나운서’로 불리웠던 그녀에게서 돌연 ‘아나운서’라는 호칭을 빼앗고, 고정석을 없애버렸다. 과거에는 카톡 등으로 전달했던 업무 관련 문서를 출력해서 놓아두는 서류함을 만들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야 할 근로자로 인정받은 그녀에게 법이 보장하는 연차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했다.
CBS는 노동위원회 법률 대응 과정에서 정규직과 완전히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던 그녀가 프리랜서라고 줄곧 주장했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회사의 주장이 ‘이유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렇다면 겸허하게 그 결과들을 수용했어야 했다. 적어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원직복직을 시켰어야 마땅하다. CBS는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의 원직복직 이후 중노위의 판정에도 불복하여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위 심문회의 등에서 그녀를 “정규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미 공언했던 약속을 이행한 셈이다. 힘든 싸움 끝에 회사로 돌아간 그녀에게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싸움의 과정에서 CBS 사장의 2022년도 신년사가 지역 언론 등에 회자되었다. 당시 CBS 사장은 “CBS의 주인은 하나님, CBS는 하나님의 기관”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CBS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해당 신년사의 문구가 자꾸만 떠오른다.
정말로 CBS가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되는 기관이 맞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神)이 사용자라면, 적어도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필요할 때만 불러 정규직과 똑같이 일을 시키다가 “근속 2년이 넘는 비정규직은 추후 법률 대응 우려가 있어 계속 고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통보를 할 수 있을까. 정규직들이 참여하는 ‘아침 직원 예배에 참석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 확인서를 굳이 보낼 리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렵사리 회사로 돌아간 그녀를 법적 다툼 이전보다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야흐로 연말이다. 어릴 적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면서 느껴지던 안도감은 ‘누군가 나의 억울함을 들어준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거리에 하나둘 켜지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을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겪은 일들에 대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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