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위기의 한국경제, ‘빌드업’으로 돌파를
정치권·노동계 서로 잇속만 챙겨
‘벤투식 성공 DNA’ 경제에 이식
구조조정·혁신생태계 조성 나서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럽과 남미 강호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빌드업’(Build-up)을 해가는 과정은 승패를 떠나 가슴 벅찼다.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약팀의 승리공식이 아니라 경기를 지배하는 우리 대표팀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패스로 상대팀의 압박을 벗어나고, 문전에서도 세련된 협업을 펼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이런 축구가 가능하구나.” 수십년 묵은 체증이 풀렸다. 이런 축구는 파울루 벤투 감독과 선수들이 4년여간 공들인 빌드업의 결실이다.
10월 전(全)산업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은 전월보다 1.5%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불확실성이 자욱했던 2020년 4월(-1.8%) 이후 30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반도체 부문 실적이 30% 급감하면서 11월 기준으로 1년 전 대비 14.0% 급감했다. 올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무역적자만 425억6100만달러에 달한다. 1965년 무역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단군 이래 최대 환란이라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84억5000만달러 적자의 5배가량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마저 갈수록 잿빛이다. 한국은행·한국금융연구원은 1.7%,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8%를 제시했다. 기획재정부도 이달 발표할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1%대로 낮출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더 어둡다. 바클레이즈·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시티·크레디트스위스·골드만삭스·JP모건·HSBC·노무라·UBS 등 9개 주요 외국계 IB가 지난달 말 기준 보고서를 통해 밝힌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1%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안한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채용을 멈춘다.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 시대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을 위급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을 필두로 우리 사회 전반의 위기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
1%까지 추락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윤석열정부의 첫 예산안(639조원)은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훌쩍 넘긴 채 표류하고 있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노정의 초강경 대치 속에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민주노총은 끝내 총파업에 돌입했다.
축구로 치면 이중 삼중으로 상대팀이 전방부터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정부와 여당에는 이를 돌파할 개인기를 갖춘 스타도 안 보이고, 경제팀은 팀워크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진영에 갇힌 야당과 민주노총도 협치와 타협에 대한 의지 대신 잇속만 챙긴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금 당장 미래를 위한 빌드업에 나서지 않으면 정글로 변한 국제경제질서에서 도태한다.
한국 경제의 빌드업은 가시밭길이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과정에서 한계 기업에 투입된 자원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틀을 정비해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작업이라 거센 저항 속에 포기하고 싶을 테지만 그 유혹을 넘어야 한다. 벤투와 대표팀이 “빌드업 축구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비아냥을 견뎌낸 것처럼.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중심의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교육제도 개선, 혁신생태계 조성,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 개선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고 권력자의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참모진이 정교하게 청사진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경기 막판 70m 이상 질주한 뒤, 겹겹으로 압박해 들어온 포르투갈 선수들 틈으로 패스한 손흥민처럼 스피드와 창의성을 갖춘 리더와 이를 ‘원샷원킬’로 연결시킨 황희찬처럼 결정력을 갖춘 선수가 한 몸이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천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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