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가보지 않은 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무슨 마음을 먹었을까.
늘 아파트 둘레길로만 산책을 다니던 내가 가보지 않은 길로 발길을 돌린 것은.
그곳에 길이 생긴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한 번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부러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턴지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 버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날,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나는 평소 같지 않게 동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때 읽었던 ‘비밀의 화원’이 문득 떠오르더니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길이 비밀의 화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다가온 것이. 그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주인공 어린 소녀가 마주쳤던 놀라운 풍경을 떠올리며 나는 그 길로 향했다. 길에 들어서니 오며 가며 지나면서 보던 겉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저 똑같은 길이려니 생각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처럼 천변에 들어선 여느 길들과 고만고만하게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아니었다. 그곳은 날것의 자연과 인공의 구조물이 적당히 섞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하긴 동네가 산자락 밑에 위치해 있는 데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전부 논밭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버스 정류장 뒤로 원두막까지 있던 전형적인 농촌이 이 동네였고, 상전벽해의 현장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곳곳에 날것의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날것의 자연을 이용한 공원도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파트 뒤편, 산과 맞닿아 있는 아파트 둘레길만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곳에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흑림을 이루고 있었는데, 나는 그 짙은 그늘과 수액의 향기가 좋았다. 한데 새로 간 길은 그 흑림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이 열려 있어서 그런지 햇빛과 바람이 살아 있었고, 그 햇빛의 입자들이 바람과 함께 간지럽게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왜 이제야 올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을 잃지 않는다면 그만큼 삶이 풍요로울 텐데, 나는 스스로를 내가 만든 틀 안에 가둬놓아 버렸다. 정말, 그동안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생의 행로든 산책길이든 그 새로운 길 위에서 어떤 풍경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렸던 것은 그 길들이 준비해 두고 있었을 또 다른 내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은미희 작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