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울림] 예술이 세상을 바꿀꺼라고? 천만에!

2022. 12. 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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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 나만 없어 조각
에르빈 브룸, 사순절 천(Lent Cloth), 2020, Metal, wool, 1100 x 750 x 5 cm, 수원시립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수원시립미술관]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오스트리아 빈의 대성당인 슈테판 성당에 길이 11미터에 달하는 대형 보라색 니트가 걸렸다. 때는 사순절. 부활절을 앞두고 40일동안 예수가 겪었던 고난을 생각하며 교회는 참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는 시기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순절 기간 제단이나 십자가, 혹은 성화를 보라색 천으로 가린다. 이른바 ‘사순절 천’인데, ‘죄 많은 인간은 신을 볼 자격이 없다’는 극한 반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에르빈 부름(68)은 이 성스러운 사순절 베일을 보라색 니트로 바꿔버렸다.

에르빈 부름은 오히려 묻는다. 참회만 하지말고 행동해야 하지 않겠냐고. 따뜻함을 상징하는 니트는 이웃을 돕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무게만 300kg에 달하는 이 니트가 미술관에 걸렸다. 수원시립미술관은 12월 7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오스트리아 출신 세계적 조각가인 에르빈 부름의 개인전 ‘에르빈 부름:나만 없어 조각’을 개최한다. 뚱뚱한 자동차(fat car), 1분 조각(one minute sculpture), 퍼포먼스 조각(performative sculpture), 스킨 조각(Skin sculpture)시리즈 등 작가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다.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조각
에르빈 브룸, 사순절 천(Lent Cloth), 2020, Metal, wool, 1100 x 750 x 5 cm, 슈테판성당 설치 전경 [사진=에르빈부름 스투디오 홈페이지]

거대한 니트 앞에서 작가는 사회에서 종교와 교회의 역할이나 실질적 실천 혹은 제도와 현실의 괴리로 인한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전혀 다른 설명을 했다.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와 성당에 걸려있을때 장소와 작품이 작동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과 지금 우리를 비교해보면 키도 훨씬 커지고 덩치도 좋아졌다.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현대사회는 이전사회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해졌다. 글쎄, 미래의 인류는 이만큼 큰 옷을 입지 않을까?”(하하)

에르빈 부름의 조각은 관객들을 쉽게 끌어들인다. 뚱뚱한 자동차 시리즈는 그 귀여운 외형으로, 1분 조각이나 퍼포먼스 조각은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1분 조각 시리즈는 '시간'을 조각의 매체로 활용한 작업이다. 작가가 적은 간단한 지시드로잉과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 그리고 그것을 올려놓는 좌대로 구성되는 이 작업은 관객이 작가의 지시를 따르면서 완성된다. 일례로, ‘멍청이들 Ⅲ’은 의자 등받이에 팔을 끼우고, 머리위에 올리는 작업이다. ‘희망 이론’은 솜인형을 들어 머리를 둘러싸는데, 위험에 닥쳤을때 위험을 바로 보지 않고 머리를 모래언덕에 숨기는 타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비슷한 작업들로 냉장고에 머리를 집어넣는 ‘아이스 헤드’, 다섯 색 스폰지를 머리, 무릎, 팔로 벽에 붙이는 ‘회화 이론’등이 있다.

에르빈 브룸, 멍청이들 Ⅲ, 수원시립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헤럴드DB]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작품들의 함의는 가볍지 않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현시대의 문제들을 카테고리화 한 뒤 이를 작품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애써 눈감고 있는 환경문제, 가정 내에서 늘 일어나는 부부간의 역할분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겠다고 떠들기만 하는 정치인의 무능력함 등 간단치 않은 문제들을 작가는 꼬집는다.

“미술관 밖으로 이 작업들이 나가면 의미가 전혀 달라지기에 예전엔 굉장히 엄격하게 지시사항을 준수하라고 했다. 그러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협업한 뮤직비디오나 발렌시아가 같은 패션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예술이 세상에 간섭하는 것을 목격했다. 다른 영역으로 확장은 흥미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에르빈 브룸, 팻 컨버터블 (팻카) 2019 알루미늄,주물,래커 133 x 240 x 430 cm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의 작업은 지독히 정치적이고 또 사회적이다. UFO(2006)는 빈티지 자동차인 포르쉐 924모델을 녹여 만들었다. 작가는 기후변화를 생각하며 녹아버린 자동차를 만들었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부유한 사람들 중 일부는 기후변화를 피해 어디론가 도망 갈 수 있을것이라고 믿는다” UFO는 지구를 떠날날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들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팻 컨버터블 카(2019)는 자꾸만 더 좋고 더 비싸고 더 큰 것을 열망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 지상주의를 풍자한다. 부풀어오르다 못해 터지기 직전인 자동차는 경제는 늘 성장하는 것을 전제하는 자본주의를 은유한다. 자동차가 떠드는 이야기는 한 층 더 심각하다.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총기, 무기에 대한 소식과 마약 문제를 부드럽고 자상한 톤으로 전달한다. 마치 잠자리 들기 전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이. 형식과 내용의 극한 반전은 소름돋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정치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요셉보이스는 예술이 정치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는 안다. 예술을 통해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정치를 일깨우며, 사회를 일깨울 뿐이다.”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웃는다”
에르빈 브룸,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 너무 귀찮아서 논쟁 안하기, 수원시립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헤럴드 DB]

에르빈 부름이 질문하는 사회문제들은 하나같이 복잡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일구지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가사노동에 대한 분담은 인류이래 단 한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 기후문제나 동물을 다루는 방식, 심지어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도 현대사회의 주요한 문제들이다. 이민, 가난, 비만과 기아에 이르기까지 동전의 양면처럼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웃음을 준다.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심플하고 위트있게 비틀어 관객들에게 던진다. “나의 작업은 위트있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웃는다” 작품을 보고 나오는 웃음이 진짜 웃음이 아닐 것이라는 작가의 설명이다.

“팻 하우스나 팻 카 모두 사회가 가진 양면성, 패러독스를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소비만능주의에 대한 우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한다는 막연한 도그마에 대해 물을 뿐이다. 정말 그렇냐고. 막연하게 웃고 넘길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길 바란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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