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가락으로 꾸는 꿈…“용기와 희망을 드려요”
크라우드 펀딩 음반 ‘블루문’ 제작
병과 싸우던 친구 회복 빈 ‘자장가’
거리 두기의 갑갑함 담은 ‘집콕’ 등
일상 속에서 영감 얻은 곡들 수록
“웹툰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할 것”
뇌병변 장애로 사지가 마비돼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김균민씨(22). 그는 신체 중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검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음악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한다. 김씨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드는 작곡자다. 김씨는 지난달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앨범 <블루문>을 제작했다. 앞서 그는 지난해 11월에도 첫번째 앨범인 <윈터버터플라이>를 디지털 음원으로 선보인 바 있다.
지난 4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펀딩을 통해 앨범 발매를 기획한 건 사회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과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한 비장애인 분들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산으로 29주 4일 만에 태어난 김씨는 망막과 폐, 심장 상태가 좋지 않았고 뇌출혈 증상도 있었다. 검사 결과 뇌병변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혼자 힘으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휠체어에 앉아 몸을 고정한 채 생활한다. 태블릿PC에 하고 싶은 말을 입력한 뒤 ‘음성’ 버튼을 눌러 대화하거나 카톡과 문자로 소통한다.
그는 2년 전에는 옆으로 휜 척추뼈를 똑바로 세워 고정하는 큰 수술까지 받았다. 이후 음악활동에 전념하게 됐다. 김씨는 “작곡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이번 앨범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밤에 비치는 달빛을 등대 삼아 나아가길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특수학교인 연세대학교 재활학교에서 초·중·고·전공과 과정을 마쳤다. 작곡하기 전까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과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를 즐겨 들으며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고 싶었지만 몸의 한계에 부딪혔다”며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유튜브 강의를 통해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미디 프로그램’을 이용해 피아노의 음과 세기, 높낮이를 세부적으로 조정해 작곡을 하고 있다. 피아노를 직접 칠 수 없다 보니 작업속도가 느리고 생각했던 곡이 나오지 않을 때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음악이 주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작곡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김씨의 재능을 눈여겨본 고등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작곡가 양수혁씨에게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다. 자신감이 생긴 김씨는 이후 1년간 준비한 끝에 1집을 선보였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자장가’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의 회복을 바라며 만든 곡으로 그에게 의미가 깊다고 했다. 김씨는 “친구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조금만 쉬면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풀밭에 누워 쉬는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외에도 만성 불면증으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심정을 투영한 ‘그루터기에서 본 새벽’, 코로나19로 집에서만 지내던 시기의 갑갑함과 막막함을 표현한 ‘집콕’ 등 소소한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은 친근감이 있다.
작곡을 하지 않을 때는 또래들처럼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는 김씨. 지난 5월부터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순수미술 교육반에서 6개월간 그림을 배웠다. 그가 그린 그림 6점은 지난달 4일부터 열흘간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제11회 상록수 단체전에 전시됐다. 그는 “작곡과 다르게 손을 많이 사용해야 해서 체력 소모가 컸지만 완성된 그림을 보며 성취감이 컸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음악 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김씨는 “피아노 작곡가로 꾸준히 활동하면서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와 협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제 음악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께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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