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환자 뇌 손상 어릴수록 심각…금단현상은 지옥의 고통”[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최민영 기자 2022. 12. 6. 2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약 전문의’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이 지난 10월26일 인천 서구 참사랑병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천 원장은 “‘마약과의 전쟁’은 마약 환자를 치료할 시설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데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통해 실질적인 마약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마약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국내 소수 전문의 중 한 명이다. 원광대 의대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거쳤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정신건강의학 전문 인천참사랑병원에 2003년 합류했고, 2007년부터 병원장으로 일하면서 보건복지부 지정 마약중독자 전문치료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 서울고검 및 인천지검 의료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안전관리심의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마약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평생 거쳐 나올 엔도르핀과 도파민
단 한번의 마약에도 단시간에 분비
뇌 빨리 망가지고 금단현상도 극심
220V 노트북에 1만V가 지나간 격

재벌 3세들의 마약 투약 사건이 최근 또 발생했다. 마약사범이 연간 1만명을 넘고 전국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불법마약류 성분이 검출되는 한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할 인프라도 충분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마약전담 치료시설을 갖춘 병원은 겨우 2곳에 불과하다. 그중 한 곳인 인천참사랑병원에서 마약치료전문의로 일하는 천영훈 원장을 지난 10월26일 만났다. 천 원장은 “마약 환자의 지능지수는 중독되기 전 정상 범주에서 중독 후엔 지체지능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 젊을수록 이 같은 뇌 손상은 심각해진다”며 “확산하는 마약에 대응하려면 치료시설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의 대마초는 개량종이라 1960~1970년대와 다르므로 합법화해선 안 된다”며 “처방전으로 남용되는 약물 중독 문제는 미국보다 우리가 더 심각하다. 의료계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마약, ‘아주 조금, 한 번만’ 하면 괜찮습니까.

“미량 정도로 괜찮은 마약이 있다면 저도 먹고 우리 가족들한테도 먹였겠죠. 그런 마약은 없어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술·담배 정도로는 경험 못하는 강력한 쾌감을 유발하는 물질이 마약이에요. 마약 환자들은 ‘하늘로 떠올라 천국을 엿봤다’고 해요. 추락한 이후엔 삶이 지옥입니다. 예외 없어요. 마약으로 물의를 빚었던 연예인들이 방송활동 멀쩡하게 하니까 마약이 대수롭지 않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옛날 대마초 얘기일 뿐입니다. 주사기로 마약 했던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됐거나 연예계에서 사라졌습니다.”

- 마약은 뇌에 어떤 작용을 합니까.

“일상생활의 기쁨은 엔도르핀 또는 도파민의 작용인데 가장 높은 경우는 성관계를 통한 오르가슴입니다. 마약은 이의 13배에서 많게는 100배를 최장 72시간에 걸쳐 뇌에서 쏟아지도록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올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다 긁어모아도 못 따라갈 정도의 양이 단번에 분비됩니다.”

- 이때 뇌는 어떻게 망가지나요.

“쾌락중추인 보상계에는 엔도르핀·도파민 공장이 있는데, 마약은 이 공장을 미친 듯이 가동시키고, 과열된 공장들은 점점 무너집니다. 결국에는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죠. 뇌 손상은 약물에 따라 다른데, LSD의 경우 뇌 안에 있는 고속도로 같은 회로들을 망가뜨리고, 필로폰·펜타닐 등의 약물은 뇌세포를 손상시킵니다. 필로폰 한 번 하는 것은 220V짜리 노트북에 1만V 전류가 지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고압전류가 회로를 다 찢어버리는 거죠. 중독 이전 지능에 비해 입원환자들의 지능지수(IQ)는 거의 20~30 정도 떨어진 상태입니다. 심할 경우 정신지체 수준에 이릅니다. 문제는 통제기능을 하는 전전두엽이 망가지면서 판단력이 떨어져 마약을 더 하게 된다는 겁니다. 알코올·도박 같은 다른 중독보다 약물중독이 훨씬 더 빨리 망가지고 회복률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금단증상도 심각하죠. 펜타닐 계통 마약 환자는 뼈마디가 다 끊어질 듯한 지옥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 어릴수록 뇌 손상이 심각하다고요.

“인간의 뇌는 25세 무렵 완성됩니다. 건축에 비유하면 골조공사를 마치고 마지막 외장재를 덮어야 하죠. 그래서 어린 시절에 약물을 시작할수록 뇌 손상은 광범위해집니다. 완공 전에 해일이 밀려와 건물이 다 쓸려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미국 대학생들이 남용해 문제가 됐던 암페타민 계통 각성제 ‘애더럴’을 국내 일부 학부모들이 미성년 자녀들에게 먹였다는 얘기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뇌 회로를 빨리 돌려서 태우는 것과 다름없죠.”

과거엔 환자 대부분이 4050 남자
환자 급증한 지금은 1020이 절반
약 쉽고 싸게 살 수 있어 문제고
처방전으로 남용된 약물 중독 탓도

- 젊은층 내 마약 확산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16년 저희 병원의 마약 외래환자 대부분이 40~50대 남자였어요. 현재 환자 수가 10배 이상 늘었는데 10~20대가 절반을 차지합니다. 중년 남성들은 대부분 숨어서 혼자 마약을 했고, 직장·가정을 책임져야 하니까 회복의 동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층은 모여서 하고, 체력이 받쳐주니까 약을 하고도 크게 힘든 걸 몰라요. 동남아 여행 가서 클럽을 통해 여러 종류의 마약을 패키지로 합니다. 필로폰 등에 국한됐던 예전과 몇년 새 크게 달라졌어요. 신종 마약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기존 마약까지 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존 마약 중심으로 대책을 짜는 편이 낫습니다.”

- 마약중독에 취약한 것도 유전됩니까.

“부모가 알코올중독일 경우 자녀도 따라갈 확률은, 그렇지 않은 부모인 경우에 비해 3~5배까지 높다고 보고됩니다. 반면 마약은 그 자체가 워낙 강력한 물질이라 유전성과 무관해요.”

- 자녀가 마약을 하는지 알아챌 방법이 있나요.

“우리나라는 각성제 계통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활동량이 많아지고, 행동이 부산해지고, 몇날을 밤을 새울 정도로 잠이 없어집니다. 마약 복용 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병원에 가면 조울증으로 오인되기도 해요. 반면 안정제 계통에 의존하는 이들은 의욕 없이 누워 지내고 잠을 많이 잡니다. 자녀 방에서 낯선 약봉지가 발견되면 부모님이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약을 할 때 가족들을 피해 ‘잠수’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공무원, 교사 등의 직업군에 대해 마약중독 검사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간이검사 키트로는 최장 2주 전 투약 여부만 확인 가능합니다. 검사일을 공고하면 그 날짜만 피해 마약을 하는데 어떻게 잡나요. 외국의 일부 기업에서는 그래서 불시에 전 직원 소변검사를 합니다.”

- 대마초 얘기를 해볼까요. 미국 일부 주와 태국이 대마초를 합법화했는데 괜찮은 겁니까.

“문제입니다. 지금의 대마초는 1990년대 초까지 유통되던 대마초와 전혀 다릅니다. 예전에 미국 히피들이 피우던 대마초는 환각을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 함유량이 ‘떨’ 하나에 3.6~3.8%였어요. 그리고 96%가 약용 가능한 칸나비디올(CBD)이었고요. 그런데 미국 정부 모니터링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유통되는 대마초의 THC 함량은 18~21%예요. 편집증·망상·환청을 비롯한 사이코시스(정신증)를 유발하는 THC 레벨이 16%인데 이를 훨씬 넘어섰어요.”

-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업자들은 CBD 우세종인 인디카 대마가 아닌 THC 우세종인 사티바를 집중적으로 품종개량했습니다. 여기에다 약품처리를 한 합성대마는 THC 함량이 62%이고, 액상대마는 92.8%예요. 대마를 피웠는데 주사기로 필로폰 한 것 같은 정신증으로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데, 2~3년 전만 해도 없던 일입니다. 미국은 1980년대 마약과의 전쟁을 하면서 대마를 1종 마약으로 지정했어요. 이후에는 의학연구도 막혔습니다. 현재 근거로 제시되는 자료들이 그래서 다 옛날 연구 결과들에 불과합니다.”

- 미 콜로라도주 등은 왜 대마초를 합법화했나요.

“경제력 약한 마약중독 환자들이 주사기를 돌려쓰면서 미국은 1980~199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과 C형 간염 환자가 폭증했습니다. 2002년 미 클린턴 정부는 주사기 교환 프로그램(needle exchange program)을 도입해 거점센터에서 헌 주사기를 새 주사기로 무상교환해줬어요. 미국은 이렇게 강성 마약도 통제가 안 되고, 고등학생들까지 대마초를 피울 정도로 마약이 만연해요. 2014년 콜로라도가 대마초를 합법화한 것은 돈이 돼서입니다. 갱단이 가져가는 대마초 유통 수입을 주정부가 세금 형태로 거두고 이를 국공립 교육시설 확충 등에 쓰겠다고 공언했어요. 산업기반이 약한 터라 마약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택한 거죠. 가공식품 및 음료 산업의 경제유발 효과가 수조원대로 예상됐거든요.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대마는 다른 마약의 대체재가 아닌 교량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콜로라도 농장을 사들여 대규모로 대마를 재배하면서 밀려난 중소 자영농들은 산으로 숨어들어가 대마를 재배하고 암시장은 더 커졌습니다.”

치료는 100일이 고비로 시간 싸움
처벌보다는 재활 등이 효율적이고
환자 치료 시설 늘리는 게 급선무
대마초 환각성분 높아 합법화 반대

- 대마초가 담배보다 금단현상이 적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담배의 니코틴 작용시간은 5분인데, THC는 최장 4시간입니다. 약기운이 떨어지는 속도가 빠를수록 금단현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고, 뇌에 미치는 악영향은 THC가 훨씬 강합니다.”

- 마약으로 손상된 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나요.

“죽은 뇌세포는 살아나지 않아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약과 술을 완전히 끊고 9개월 정도가 되면 살아 있는 뇌세포가 나뭇가지 뻗듯이 성장하고, 3년 정도가 되면 원상복구가 됩니다. 중독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알코올·도박·마약 중독 모두 100일이 고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약에 대한 갈망이 줄어들고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국은 경쟁사회에서 불행지수와 자살률이 높아 마약이 퍼질 토양이 갖춰져 있다’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청소년들과 청년층이 건강한 여가생활과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방구석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쾌락은 인터넷게임 중독 아니면 마약 정도밖에 없어요. ‘피자 한 판 값’에 약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도 문제죠. 게다가 처방 약물에 중독되기도 쉬운 상황이에요. 외국에서 강성 마약을 하던 이들이 한국 병원에서는 달라는 대로 약을 다 주니 ‘살 만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의사들은 ‘이 환자가 왜 굳이 이 약을 찾을까’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 마약 환자 증가세에 비해 치료시설은 매우 부족하다고요.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기관 20여개 중 시설을 갖춘 곳은 저희 병원 등 두 곳에 불과합니다. 법무부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잡아들이면 뭐합니까. 재활시설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강력한 마약범죄 처벌에도 불구하고 재범률이 40% 정도인데, 이건 처벌이 해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서구에서 성공한 마약정책이 딱 두 가지인데, 앞서 말씀드린 주사기 교환 프로그램과 ‘약물 법정’입니다. 마약사범을 구속하는 대신 판사가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배치해 마약 환자의 치료 및 재활 과정을 점검하고, 모범적인 경우에는 전과를 말소시켜줍니다. 우리 정부도 컨트롤타워를 통해 실질적인 마약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 입니다.”

마약 보도에도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국내 언론의 마약 보도에 대해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려다가 마약 유통경로를 소개하는 수준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국언론(기자협회)이 2004년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도입하고, 2012년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기준을 마련한 것처럼 마약 보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의 가이드라인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 범죄 증가 추세에 맞게 도입 검토가 시급하다.

그는 한 방송에서 온라인을 통해 마약을 구입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시연했는데, 호기심 많은 10대들이 이를 따라했다가 실제로 약물에 중독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책들은 이 같은 마약 초보들에게 LSD나 엑스터시 같은 더 높은 단계의 마약을 샘플로 제공하며 더 깊은 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천 원장은 마약 보도 관련 자료영상으로 흰색 가루나 주사기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도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필로폰 환자들은 주사기만 봐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고 호소한다. 그런 화면은 마약 사용을 부추긴다고 느낄 정도로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마약성 약물이 문제가 된다는 보도를 하면서, 약품의 구체적 상표명을 언급하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

‘텔레그램을 통해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구입, 결제하면 단속이 어렵다’ 같은 내용도 부적절하다고 천 원장은 지적했다. 게다가 사실도 아니다.

“국가를 불문하고 마약 판매자는 기소될 경우 유죄협상(플리 바기닝) 용도로 구매자 정보를 관리하기 때문에 구매자는 100% 다 걸리게 돼있다”면서 “추적하기 어려운 다크웹과 특정 장소에 물품을 미리 놓고 가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구입한다고 잡히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