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담아둔 74년 세월…희생자 아닌 수형인 첫 재심 ‘무죄’
[KBS 제주] [앵커]
제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검찰의 직권재심으로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하고 있는데요.
당시 똑같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90대 할머니가 처음으로 직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신익환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8년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96살 박화춘 할머니.
박 할머니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3 피해자라는 사실을 주변에는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숨기고 살았습니다.
혹시나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4·3 평화재단의 추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박 할머니가 생존 수형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박 할머니는 4·3 희생자 신청을 하지 않아 4·3 특별법에 따른 직권재심 요건을 갖추지 못했는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상 재심 대상으로 판단해 지난 10월 직권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4·3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생존 수형인을 대상으로 한 검찰의 직권 재심 청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합동수행단은 박 할머니가 무장대와 공모해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고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고.
[변진환/4·3 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 검사 : "재판장님. 피고인이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찰의 무죄 구형에 재판부도 곧바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장찬수/제주지법 4·3 재심 전담재판장 : "다음과 같이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은 무죄."]
박 할머니는 당시 고문에 못 이겨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형무소로 끌려갔지만 가족들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고맙다고 가슴 속에 담아뒀던 한을 털어놨습니다.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자식들한테도 말하지 못했는데, 너무 고맙고.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박 할머니 아들도 늦었지만 어머니의 억울함과 한을 풀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창숙/박화춘 씨 아들 : "가슴에 응어리 맺힌 것을 풀어야 자식도 마음이 편하죠. 어머니 무죄를 받아 편안하게."]
이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19차 직권재심을 통해서도 수형인 30명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로써 4·3 군사재판에 따른 수형인 2천 5백여 명 가운데, 합동수행단의 직권 재심으로 521명의 명예가 회복됐습니다.
KBS 뉴스 신익환입니다.
신익환 기자 (si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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