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자유`를 포기할 때 벌어질 일들
최근 우리 사회의 정체성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구권력인 문재인 정권에서 빈발했던 이념과 정체성 논쟁이 윤석열 정부 초기에 고개를 든 것이다. 발단은 교육부가 2022 개정 교과과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넣자 좌편향 성향의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이 "교과과정의 수정을 중단하라"며 딴죽을 걸고 나서면서다. 이 단체는 민주주의에 '자유'를 끼워넣는 것에 부정적이다.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평화와 인권 등 다양한 가치가 포함된,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해괴한 논리를 편다. 그로 인해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된다고 주장한다.
좌익 성향이 강했던 문 정권에선 헌법 조항의 '자유'란 단어를 삭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뺀 '민주적 기본질서'로 헌법 4조를 수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는 일부 정치인이 연루된 '미투 논란'으로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때였다. 당 내 여론조사에선 자유를 뺀 개헌안에 찬성하는 의원(40%)보다 기존 헌법을 선택한 의원(60%)이 더 많았다. 결국 당내에서조차 지지받지 못한 개헌안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고 만다.
대한민국 체제의 근간은 자유민주주의다. 남북한이 통일될 때 어떤 국가 정체성을 추구해야 할지가 헌법4조에 분명하게 정의돼 있다. 북한 같은 독재체제, 유일 정당 체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근간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적시돼 있다. 그럼에도 '자유'를 배격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해방 이후 남북한이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다르다. 남한에선 1948년 5·10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헌국회 의원들이 중심이 돼 정치·경제체제로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했다. 반면 북측은 인민민주주의와 계획경제를 채택했다. 좌우 이념갈등이 극심했던 해방 정국에서 만약 공산체제의 실상을 꿰뚫고 있던 선각자들이 없었고, 국민투표를 통해 체제를 택하게 했더라면 과연 남한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을까. 당시 분위기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좌파의 교리는 분노와 슬픔, 시기심 등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파고든다. 그들이 내세우는 결과의 평등주의가 사회 불평등에 분노하는 계층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올 게 뻔하다.
전체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들도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는 '자유'를 쏙 뺀 '인민민주주의' '민중 민주주의'다. 그 체제에선 '자유'가 핵심적 가치가 아니다. 다수가 원하는 목표와 가치를 위해 언제든지 포기해야 하는 하위 수단일 뿐이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분노와 시기심, 질투심을 이용해 타인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1946년 북한 김일성이 추진한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그러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다수는 땅을 무상으로 준다고 하니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불과 몇년 후 토지 분배를 받았던 모든 사람이 결국 농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북한 당국자들이 인민을 위한다며 분배한 땅을, 인민의 이름으로 개인 재산을 다시 몰수한 것이다.
문 정권 5년은 종북세력이 크게 득세하며, 자유의 가치가 훼손됐던 시기다. 문 정권 아래서 사법권은 껍데기만 남았고, 삼권분립의 법치주의도 무너졌다. 선심성으로 나눠주는 정책자금에 나라 곳간이 텅 비는 줄도 몰랐다. 사회주의 정책인 토지공유제 도입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의원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국민들은 입법독주하는 문 정권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윤석열 정부에 표를 몰아줬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에 굴복하는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지만, 남북이 대치한 한반도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선전선동에 의해 체제를 뒤집으려는 세력들이 건재하다. 이는 광우병 사태에서도 목격됐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대부분의 서구 사회는 피의 대가로 자유를 쟁취했다. 그만큼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우리 사회에선 공익이란 이름으로 자유와 재산을 강탈하려는 세력들이 권력을 노린다. 자유를 못 지킨 국민에겐 억압과 독재의 굴레가 기다릴 뿐이다.
박양수 콘텐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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