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과실로 참사' 법리 다툼…비상걸린 특수본(종합)
구속영장 재신청 불투명…소방·구청 향후 수사에도 악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김윤철 기자 =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현장 책임자였던 이임재(53)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가리는 경찰 수사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이 전 서장은 이번 수사의 핵심 피의자로 꼽혀왔다. 지난달 1일 출범 직후 그를 가장 먼저 수사선상에 올린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예상을 빗나간 법원의 결정에 당혹해하며 수사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특수본은 구속영장 기각 이튿날인 6일 오전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유미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전날 밤 이 전 서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는 이 전 서장을 구속할 필요성이 적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미 수차례 압수수색과 광범위한 참고인 조사로 증거와 진술을 최대한 끌어모은 특수본으로서는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하기 위한 보완 수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원은 이 전 서장과 같은 혐의를 받는 송병주(51)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경정)의 구속영장도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특수본과 검찰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송 전 실장이 다른 직원들과 말을 맞추거나 회유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도 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감찰 단계부터 조사가 많이 진행돼 증거인멸 가능성이 적고, 용산서 직원들 진술이 저마다 달라 말을 맞추기도 힘들다는 송 전 실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바라보는 법원의 회의적 시각도 앞으로 수사에 난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안전대책 보고를 받고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았고, 참사 발생 직후에도 구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본다. 이같은 과실이 참사의 원인 제공은 물론 인명피해도 키웠다는 논리를 입건된 대부분 공무원에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피의자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전 서장 구속수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고, 사실상 범죄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핼러윈 축제 안전대책의 1차적 책임을 지는 용산구청이 경찰에 구체적인 경력 동원을 요청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할 경찰서에 참사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법 적용 아니냐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현장 책임자에게도 뚜렷하지 않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윗선'인 김광호(58) 서울경찰청장과 윤희근(54) 경찰청장 등 수뇌부에 따져묻기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특수본은 경찰뿐 아니라 구청·소방당국의 각종 내부 문건과 참사 당시 상황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대거 확보해놓고 이를 토대로 공무원들 과실과 참사 사이의 법리적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법원 입장은 다른 피의자들 신병처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은 당장 박희영(61) 용산구청장과 최성범(52) 용산소방서장의 구속영장부터 재검토해야 할 처지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 예방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고 참사에 부적절하게 대처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다.
최 서장도 참사 직후 대응 2단계를 늦게 발령하는 등 부실한 대처로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입건됐다.
특수본은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두 사람이 말 맞추기 등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구속 상태로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전 서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감안해 이들의 범죄사실을 뒷받침할 증거와 법리를 보강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 구청장과 최 서장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재난을 대비하고 구호할 1차적 책임을 지는 만큼 경찰 책임자인 이 전 서장과는 다른 법원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yun@yna.co.kr, newsje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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