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칼럼] 이야기할 때와 물을 때

한겨레 2022. 12. 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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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칼럼]2022년 11월5일로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2016년 녹음실 창으로 내리쬐던 햇살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정부에서 정한 애도기간은 다했지만,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1월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탁환 | 소설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가? 빛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한 적은? 웃으며 울거나 울며 웃은 적은?

2016년 1월,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녹음을 위해 스무개 남짓 물음을 다듬은 후 유가족과 마주 앉았다. 한시간 내외로 방송할 예정이었으므로 넉넉하게 두시간 녹음실을 빌렸다. 그런데 첫날부터 네시간을 넘겼다.

녹음실에서 겪은 두가지가 잊히질 않는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진행을 맡은 내가 첫머리에 던진 유일한 질문이었다. 유가족의 대답이 장강처럼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말솜씨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앞다투어 나와 머리를 치고 가슴을 흔들었다. 이야기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집중했다. 갓난아기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의 나날이 펼쳐졌다. 망자로 인해 온 가족이 행복했던 대목에서는 나도 유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울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웃음이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울음이었다. 그 후로는 녹음을 마칠 시간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 첫 질문은 진행자가 던지더라도, 뒤를 열어두고 가보기로 한 것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안 된다면, 유가족의 이야기 역시 끝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다.

2022년 11월5일로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2016년 녹음실 창으로 내리쬐던 햇살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정부에서 정한 애도기간은 다했지만,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흐느낌도 이야기이고 웅얼거림도 이야기이다. 나누기 좋게 정돈하진 않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고, 뚝뚝 끊긴다고,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마중물처럼 빨리 오지만 어떤 이야기는 받는소리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입안에서 맴돌기만 한다. 그 이야기들이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만큼 슬픔이 크고 절망이 깊기 때문이다. 기다려야 한다. 하루가 부족하면 열흘, 열흘이 부족하면 한달, 한달이 부족하면 일년. 뒤를 열어두고 물러나되 귀를 열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이태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야기 방식의 효율성을 따질 문제도 아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할 일은 피해자 네트워킹, 즉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충분히 마음껏 이야기할 판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고립된 채 절망과 슬픔 속에 갇히지 않도록, 함께 모여 절규로도 이야기하고 눈물로도 이야기하고 한숨으로도 이야기하도록, 배려하되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아주 작은 이야기에서 무척 큰 이야기까지, 세세하게 곱씹는 이야기에서 껑충껑충 살피며 추측하는 이야기까지, 참사 당일 참담한 죽음의 이야기에서 신나고 즐거웠던 삶의 이야기까지, 신에게 ‘한말씀만 하소서’ 부르짖는 이야기까지, 못할 이야기가 없는 넓고 안전한 판이어야 하는 것이다. 판을 깔았다고 주인 행세를 하며 이야기를 선점해서도 안 되고, 오가는 이야기들이 탐탁지 않다고 판을 깨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 판에서 물음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잇는 접속사이자 함께 머리를 맞대게 하는 우물이다. 고향도 나이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물음을 쥐는 순간, 마주 보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이야기가 깊어갈수록 더 많은 물음이 쌓일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싶은 물음이 생길 것이다. 단단하고 날카롭고 간절한 그 물음들이 길을 낼 것이다.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조사일 수도 수사일 수도 있다. 모여서 하는 집회나 행진일 수도 혼자 파고드는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일 수도 있다. 논스톱 서비스처럼 단번에 해결할 꿈은 꾸지도 말고, 더듬더듬 천천히,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가야 한다.

이야기는 생사를 넘나든다. 26년 넘게 장편을 쓰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내 문장으로 옮겨 왔다. 등장인물과 내가 같은 물음으로 연결되었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2014년 침몰한 세월호로 들어가서 희생자들을 한명씩 정성껏 안고 나온 민간 잠수사를 주인공으로 <거짓말이다>라는 장편을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와 유가족과 민간 잠수사를 잇는 물음들을 생명줄처럼 찾아 쥐며 이렇게 썼다.

사람은 죽어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닐 겁니다.

지금은 침묵한 채 답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이야기하며 물을 때고, 물으며 이야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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