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최고의 명언 ‘중꺾마’ 만든 문대찬 기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란 신조어가 2022 카타르월드컵을 계기로 전 사회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다. 중꺾마란 강한 대결 상대, 녹록치 않은 여건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뜻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사상 두 번째로 원정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슬로건으로 널리 쓰였다. 12월 3일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막판 극적인 역전승으로 한국의 16강행이 확정되자 권경원, 조규성 선수가 해당 문구가 적힌 태극기를 들어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극전사의 투혼을 함축한 슬로건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쓰이기 시작한 중꺾마는 정치권 등 사회 각 분야로 파급되고 있다.
"오늘 지긴 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중꺾마란 표현의 기원은 인터넷 매체 쿠키뉴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쿡깸/쿠키뉴스 게임' 유튜브 채널에 10월 9일 게시된 'DRX 데프트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제하의 영상이 바로 그 발원지다. 해당 영상은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DRX팀 주장 김혁규(게임명 '데프트') 선수를 인터뷰한 것이다. LOL 월드 챔피언십은 축구 월드컵에 견줘 '롤드컵'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는 대회다. 2013년 프로 게이머로 데뷔한 김 선수는 뛰어난 실력으로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유달리 롤드컵 우승복(福)은 없었다. 당시 1라운드 경기 석패 후 가진 인터뷰에서 김 선수는 "우리가 플레이를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 오늘 지긴 했지만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자신감처럼 DRX팀은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롤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중꺾마가 큰 열풍을 만들 거라 예상했나.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DRX팀 우승은 e스포츠 팬 사이에서 화제였지만, 해당 문장 자체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롤드컵과 월드컵에서까지 많은 국민들이 이처럼 중꺾마란 표현을 사랑해줘 놀랐다. 롤드컵 후 김 선수를 또 다시 인터뷰했는데 '만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고맙다'고 하더라. 김 선수가 컴퓨터 마우스에 친필 싸인을 해줘서 (마우스를) 아크릴 박스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웃음)."
-김 선수에게 중꺽마란 표현을 쓴 이유는 뭔가.
"그간 김 선수를 자주 인터뷰하면서 '선수가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출중함에도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다. 다소 심적 여유가 없어 보여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롤드컵에서 만난 김 선수는 표정이 평소보다 여유로웠다. 인터뷰 때 '롤드컵을 충분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을 건네자 김 선수가 '이기고 지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 당장 한 경기에서 지더라도 결국 (결승전에) 올라갈 것이란 확신이 있어 보였다. 김 선수의 마음이 단단해진 느낌을 받았다. 해당 제목은 김 선수로부터 개별 경기의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 전진하는 인상을 받고 정말 홀린 듯 붙인 것이다."
-특정 영화, 게임에서 쓰인 표현이란 시각도 있는데.
"책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대학 시절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는데, 문학 작품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일 순 있다. 다만 최근 언급되는 영화나 게임을 참고한 건 아니다."
"태극전사 드라마 덕에 '중꺾마' 주목"
-중꺾마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그간 언더독이라 평가받던 DRX팀이 세간의 평을 뒤집고 롤드컵에서 우승했다. 김 선수는 우승 소감에서 만약 자신이 포기하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도 포기할 것 같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언더독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사람들의 공감을 산 것 같다."
-소감과 앞으로 포부는.
"얼떨떨하고 감사한 기분이다. (중꺾마 열풍이) 나 자신이 만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DRX팀과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활약이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단어다.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태극전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야말로 드라마를 썼기에 중꺾마가 더 주목받은 것 아니겠나. 기자로서 앞으로도 e스포츠 현장에서 선수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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