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반·배 장벽' 쌓는데···韓은 '미래 생존'을 政爭 도구로

윤경환 기자 2022. 12. 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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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수렁에 빠진 기업]
<상> 기업 경쟁력 법안 하세월
美, 반도체지원법 속전속결 처리···EU는 59조 투자 합의
日·中도 첨단산업 육성 총력전, 국익 앞 초당적 힘모아
정치권 합의카드 된 K칩스법···'발등의 불' 기업 한숨만
[서울경제]

산업계는 최근 미국과 유럽·중국 등 각국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부문에 대해 쌓는 장벽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내 배터리·전기차 생산을 사실상 강제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하는 목적의 ‘반도체칩과 과학법(반도체지원법)’,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움직임, 속도가 빨라진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 주요국들이 한국의 수출 길을 앞다퉈 가로막는 만큼 무역 부진이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은 한국의 정치권이 당장 처리해도 늦었다고 평가될 각종 지원 법안조차 외면하면서 기업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비판했다.

6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이른바 국회는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일러야 내년 2월에나 처리할 수 있다. 이달 8~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에는 여야 간 시각차가 여전히 크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국가첨단전략산업법과 함께 풍력발전법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특법의 경우 ‘대기업 특혜’라는 지지자들의 비판 때문에 윤석열 정부보다 한참 적은 세액공제 혜택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숙원인 ‘수도권 내 대학 정원 확대’ 논의도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불거지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는 올 8월 고작 13일 만에 속전속결로 반도체지원법을 도입한 미국과는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미국은 이 법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68조 원)를 지원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게 됐다. 세액공제 지원 효과만 10년간 240억 달러(약 31조 원)로 추정된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과 세부 조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핵심 지원책만 떼어낸 수정안을 상하원에서 단번에 처리했다. 국익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었던 셈이다. 핵심 법안에 대한 합의안을 끌어낼 묘안이 없는 여당, 국익은 신경 쓰지 않고 정권의 실책을 노리는 야당만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사례다.

나아가 EU의 27개 회원국 산업장관들은 이달 1일(현지 시간) 반도체 생산 확대에 430억 유로(약 59조 원)를 투자하는 EU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이 법안은 유럽의회가 최종안을 통과시키면 시행된다. 일본 또한 올 5월 경제안보법을 처리하며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다. 여기에 올해 7740억 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섰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후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정치권의 ‘강 건너 불구경 하기’ 행태에 속을 태우는 산업은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전기차 업계도 미국의 IRA 시행 이후 발등에 불이 붙었다. IRA는 북미산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 제도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에 따르면 이 회사의 11월 아이오닉 모델 판매량은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1191대, 하이브리드 차종 아이오닉 2대 등 총 1193대에 그쳤다. 이는 10월의 아이오닉 모델 판매 대수(1580대) 대비 24.5%나 감소한 수치다. 기아의 전기차 EV6도 11월 미국 시장에서 641대밖에 팔지 못했다. 10월(1186대)보다 판매량이 46%나 줄어든 것이다. 반면 미국 기업인 포드의 현지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1월 5.7%에서 올 11월 7.4%로 훌쩍 뛰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북미에서 생산된 포드 전기차가 IRA의 보조금 혜택을 받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도 유사한 법안을 준비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4일 “EU는 IRA에 대항하기 위해 공공투자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친환경 기술 전환을 위한 추가 재정 지원의 필요성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에 대한 우려로 8월 하순부터 수차례 직접 미국을 찾았다. 올해 알려진 정 회장의 미국 출장만 6번에 달한다. 전기차 업체에 납품해야 하는 배터리 업계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최근 북미 지역에 투자하거나 투자할 예정인 금액만 20조 원에 육박한다.

EU 집행위원회도 IRA에 대항하기 위해 올 9월 역내 자원 생산과 중요 원자재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내용의 원자재법 제정을 공식화했다. 법안의 초안은 내년 초 공개된다.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 수요의 80%를 EU 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터리 분야의 세계 1위 국가인 중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산과 철 등이 사용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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