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사도 3~6개월 더 걸려…부실공사, 안전사고 위험도
[편집자주]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1000가구 단지 기준으로 예전보다 공사 기간이 3~6개월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 인기 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A 대형 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52시간 근로제가 정착된 이후 국내 건설 현장도 공사 기간이 늘어났다.
이전까진 약 1000가구 단지를 지으려면 공사 기간이 2년 정도 소요됐는데, 주 52시간제 이후에는 2년 3개월~2년 6개월로 늘어났다. 이보다 가구 규모가 큰 대단지는 공사 기간만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일례로 국내 최대 규모인 1만2000가구로 재건축하는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온)는 철거 기간만 1년 넘게 소요됐다. 실제 착공일인 2020년 2월 이후 2년 10개월이 지났지만, 최근 공정률은 약 55% 수준이다.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현장이 멈춘 기간(118일)을 고려해도 2년 6개월이 지났다. 준공 예정일은 2025년 초로 공사 기간은 아직 2년 더 남았다.
통상 아파트 공사에서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정은 지하층 조성 작업이다. 땅을 파서 지하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고층 건물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고강도 파일을 심는 데 단지 규모에 따라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다만 건설 현장에선 지하층 공사를 마치고 아파트 건물 외형을 짓는 골조 공정에서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골조 공정은 35층 높이 아파트 기준 6~8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이 때 현장에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건물 2~3개 층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뒤 최소 2주간의 양생을 거쳐야 시공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골조공사 기간에는 현실적으로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B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겨울철은 골조공사 시 안전사고 위험이 커져 가급적 날씨가 따뜻할 때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해서 마무리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며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면 공정 스케줄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야 작업을 동반하는 돌관공사(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한달음에 해내는 공사)까지는 아니어도, 공사 특성에 맞도록 유연한 제도 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C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하철 등 인프라 공사에서도 작업별로 전문성을 갖춘 근로자가 있기 때문에 52시간을 초과 근무가 필요할 때가 있다"며 "요즘엔 거의 이런 시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정을 멈출 수밖에 없어 현장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연간 단위로 업무 계획을 짜는 대형 건설사들보다 일감이 유동적인 중소 건설사들이 52시간제에 따른 애로 사항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특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는 중소 건설사 특성을 반영해 52시간제 운용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군별로 52시간제 운용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비교적 업무 예측성이 높은 사무직은 초과 근로를 지양하되, 날씨 변화 긴급 상황 발생 등으로 사전에 작업량 예측이 어려운 현장직은 근로시간을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는 2019년 건설 현장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보완책을 건의했다. 당시 협회는 △2018년 7월 1일(법개정일) 이후 공사부터 근로시간 단축 특례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노사합의 시 3개월→1년으로, 취업규칙에는 2주에서 1개월로 각각 확대 △해외 건설공사는 근로시간 단축 적용 대상 배제 등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로 채택된 것은 없다. 협회 관계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서 근로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예외 사유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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