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범 컬럼] NBA 감독의 트랜드를 관통하는 키워드 NBA 무경력자, 70년대생, 그리고 포포비치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2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첫째는 NBA의 트랜드가 이렇다고 해서 이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만 봐도 각양각색의 출신배경을 가진 지도자들이 저마다의 성공 가도를 쓰고 있다. KBL과 CBA(중국), B.리그(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NBA는 이렇다’, ‘미국이 이렇다’라는 정보로 굳이 해외를 동경할 필요는 없다. 또, 이 글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것도 아니다. 리그의 상황은 다 다르다. 중요한 건 ‘고용 트랜드’ 속에 깔려 있는 핵심 키워드다. 두 번째로 이 조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 부분에 흥미를 갖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여러 루트를 통해서 관계자들에게 질의를 해왔다. 5년 전이든, 3년 전이든 그들의 대답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똑같았음을 밝힌다. 이 글은 그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소개하며 진행될 것이다.
젊은 감독들에게 바라는 것 : 포용
지난여름 유타 재즈에 고용된 윌 하디는 1988년생으로 NBA 감독 중 가장 막내다.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젊은 나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NBA의 전설적 명장으로 남은 팻 라일리(1945년생)가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에게 ‘감독’으로서 처음 지시를 내렸던 1979-1980시즌 나이가 지금의 윌 하디 나이였다. 1986년, 시카고 언론의 무수한 질문 공세 속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덕 콜린스(1951년생)도 데뷔할 때 30대 중반이었고, 당시 “너무 젊은 것 아닌가”라는 《시카고 트리뷴》 기자의 질문에 콜린스가 예시로 든 감독(래리 브라운, 1940년생)도 겨우 33살이 나이에 대학팀 감독을 맡았다. 브라운 감독은 캔자스 대학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서 우승을 거머쥔 명장으로, 프로팀 덴버 너게츠의 감독이 됐을 때도 겨우 35살이었다.
물론, 윌 하디가 팻 라일리, 래리 브라운처럼 명장이 될 운명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타는 리빌딩 팀을 이끌어줄 젊은 리더십을 원했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애제자’였던 하디를 추천했다. 하디가 겨룬 경쟁자들이 NBA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출신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구단은 젊은 선수들과 함께 성장해갈 리더십을 필요로 했고, 그 적임자가 하디였다. 리그는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1985년생 마크 데이그널트 감독이 맡고 있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4세가 안 된다. NBA에서도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다들 대학교를 1학년만 마치고 프로에 오다보니 오클라호마시티처럼 젊은 팀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NBA에는 감독들도 젊어지는 추세인데, 1970년대생이 13명이나 되고, 1980년대생도 5명이나 있다. 이메 우도카 전(前) 감독이 사생활 논란으로 하차한 보스턴 셀틱스도 조 마줄라(1988년생)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데, 현재 보스턴은 동부 1위를 달리고 있다.
1970년 이후 출생 감독 18명 중 NBA 선수 경력이 없는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시스턴트 코치 경험이 풍부하고, 스카우트와 비디오 분석, 공격/수비 전술 정리, 선수 개별 훈련 담당 등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프로 의식, 농구에 대한 이해도 등을 인정받아 차근차근 계단을 밟았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 계단씩 오르는 사이에 통솔력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NBA 30개 팀 단장들이 ‘최고의 감독’으로 뽑는 에릭 스포엘스트라(마이애미 히트)나 올 시즌 새크라멘토 킹스 돌풍을 주도 중인 마이크 브라운은 그런 NBA 선수 무경력자 감독의 선두주자다. 두 감독의 에피소드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비디오 분석을 위해 밤을 새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농구단 업무에 대해서도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스포엘스트라는 팻 라일리가 직접 발탁하고 키워낸 인재다. 스포엘스트라가 감독이 된 직후, 아직은 돈이 없어 허름한 양복을 입고 오자, 라일리가 직접 고급 정장을 선물하며 격려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브라운의 경우는 지나치게 업무에 몰두해있자, 포포비치 감독이 “오늘부터 3일간은 가족들과 보내게. 내가 자네에게 휴가를 주는 거야. 만약 이 기간 중에 일하는 모습이 눈에 띄면 그때 자네는 바로 해고야”라며 집으로 보냈을 정도로 일벌레였다. 물론, 단순히 일만 많이, 오래 한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두 레전드 감독의 눈에는 그 과정에서 리더의 자질을 발견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 리더십은 단순히 선수를 잘 이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NBA 코칭스태프 체계도 상-하 관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다른 리그에 비해 수평적인 편이다. 스티브 커나 포포비치는 종종 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해서 “나는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맨 앞에 서서 맞는 사람”이라고 말을 해왔는데, 그 말속에서 그들이 조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스티브 커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단언컨대 2010년대를 지배한 NBA 최고의 인기 구단일 것이다. 2015년, 2017년, 2018년, 2022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2022년 우승은 앞선 3번의 우승과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데이터 자료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커는 애초 데이터를 많이 활용하던 감독이 아니었다. 그러나 케빈 듀란트가 떠나고 리빌딩에 돌입한 이후 데이터 전문가를 대거 고용했고, 커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그 데이터를 자신들의 농구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골든스테이트 문화는 이러한 포용에서부터 시작됐다. 올 시즌 골든스테이트를 떠나 새크라멘토 지휘봉을 잡은 마이크 브라운은 인터뷰에서 “스티브 커와 일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
브라운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르브론 제임스와 NBA 파이널(2007년)에 진출하는 등 나름대로 감독 커리어를 잘 쌓아갔던 인물이다. 그러나 2016년부터 6시즌은 ‘제 발로’ 골든스테이트의 코칭스태프에 합류해 스티브 커를 보좌했다. 젊은 나이(1970년생)에 감독이 되어 르브론, 코비 브라이언트 등 초거물급 슈퍼스타들만 관리했던 브라운은 골든스테이트에서 새로운 것을 배웠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문화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O, X가 전부는 아니다
종종 농구 지도자들은 자신을 ‘OX MAN’이라고 부른다. 다이어그램을 보면 이해가 간다. 감독들이 그리는 작전은 주로 O(공격)와 X(수비)로 표기된다. 브라운 감독은 “O와 X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아마도 NBA 감독이 될 정도라면, 아니 어느 나라에서든 프로팀 감독이 될 정도라면 자신만의 농구에 대한 식견과 철학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농구 경기, 혹은 코칭에 대한 지식은 더 논할 이유가 없다. 감독 자리가 수학능력시험처럼 지식으로 시험봐서 뽑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말이다. 브라운은 골든스테이트를 떠난 직후 “내가 감독으로 있으면서 너무 플레이 하나하나에 연연했던 것 같다. 수비만 생각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선수들이 지내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커 감독은 늘 준비된 자세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며 문화를 구축했다”라고 되돌아봤다. 그 방식이 그대로 입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새크라멘토는 현재 2000년대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대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스승 포포비치도 같은 말을 한다. 포포비치는 윌 하디에게 조언하면서 “O와 X는 따지고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경기 중에 나타나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중요한 건 선수들과의 신뢰이고, 코칭스태프와의 신뢰다. 그렇게 신뢰 속에서 성장한 후배가 다른 팀의 지도자가 되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얼마나 스릴있는 일인지 모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샘 프레스티 단장도 데이그널트 감독을 고용하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이 “함께 인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달라”였다. 데이그널트는 코네티컷 대학을 나온 ‘타고난 선생님(teacher)’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 누나 모두 학교 교사이고, 아내도 체조 코치로 활동 중이다. 심지어 데이그널트도 코네티켓 대학 시절에 교직 과정을 이수했다. 구단은 데이그널트가 이른 나이에 프로에 진출한 젊은 선수들을 위해 기술 뿐 아니라 프로의 자세까지도 잡아주길 기대하고 있다. 니콜라 요키치와 덴버 너게츠 프랜차이즈를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바꿔놓은 마이클 말론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말론 감독은 대학과 프로를 모두 경험한 지도자다. 1993년 로욜라 대학을 졸업하고 코치가 된 이래 20년간 어시스턴트 코치로 생활하다 비로소 감독이 됐다.
그는 “나의 브랜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강조한다. “나는 선수들을 믿는다.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믿게 하고, 나를 따르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덴버는 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선수 육성팀을 오래 전부터 공들여 강화해왔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소개된 지도자들 대부분이 포포비치와 링크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브라운, 스티브 커, 윌 하디, 그리고 마이크 부덴홀저(밀워키), 몬티 윌리엄스(피닉스), 타일러 젠킨스(멤피스), 탐 티보도(뉴욕), 잭 본(브루클린) 등이다. 또 단장, 어시스턴트 코치, 각 구단에 고용된 비디오 분석관과 스카우트까지 합치면 그 비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포포비치 감독이 ‘스릴있다’고 말한 이유가 이해된다.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를 우승으로 이끈 ‘올해의 감독’ 베키 해먼도 포포비치를 보좌했으니, 이제는 NBA의 믿고 쓰는 브랜드가 된 느낌이다.
선수 출신은 정말 실패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NBA 선수 출신 감독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일까. 2010-2011시즌부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 중 NBA 선수 경험이 있는 지도자는 스티브 커(2016년)와 몬티 윌리엄스(2022년) 밖에 없었다. 티보도(2011, 2021년), 조지 칼(2013년), 포포비치(2012, 2014년), 부덴홀저(2015, 2019년), 드웨인 케이시(2018년), 닉 널스(2020년) 모두 선수 시절에는 NBA 근처도 못 가본 인물들이다. 2000-2001시즌부터 2009-2010시즌까지 감독상을 받은 10명 중 6명이 NBA 선수 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조적인 현상이다. 또, MVP 출신 선수가 감독이 되어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은 건 1997-1998시즌 래리 버드(전 인디애나 감독)가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오늘날 주전급 중에 농구 감독이 될 인물이 얼마나 나올 지도 살펴봐야 한다. 샐러리캡의 인상 덕분에 최근의 선수들은 각자의 관심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굳이’ 감독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으려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터란 루(LA 클리퍼스), 몬티 윌리엄스(피닉스), 윌리 그린(뉴올리언스), 첸시 빌럽스(포틀랜드) 등 보면 무경력자만 잘하는 그런 판도는 또 아니다. 비록 닥 리버스(필라델피아)가 플레이오프만 되면 시리즈 역전패를 당하고, ‘인 게임’에서의 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어찌됐든 그도 NBA 우승을 경험해본 인물이며, 23시즌 중 18번이나 NBA 플레이오프에 가본 우승팀 감독 출신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분명 선수 출신도 메리트가 있다. 다만 그 메리트가 실제 도움이 될지 여부는 단 하나에 달려있다. 바로 ‘준비’와 ‘실력 입증’이다. 터란 루(어시스턴트 코치 5년), 몬티 윌리엄스(어시스턴트 코치 7년), 자크 본(어시스턴트 코치 8년), 다빈 햄(어시스턴트 코치 14년) 등은 아주 오랜 시간 감독들을 보좌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아래에서부터 수업을 받고, 눈높이를 맞춰가며 올라왔다는 것이다. 제이슨 키드도 은퇴하자마자 감독이 된 직후에는 여러 실수를 거듭했지만, 긴 경험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자격 논란이 따르지 않는다. 키드 감독은 MVP 야니스 아테토쿤보를 지금의 ‘freak(괴물)’으로 ‘진화’시킨 주역 중 하나다.
결국 출신 여부를 떠나 제일 중요한 것은 포용이다.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청사진대로 팀을 끌고 가야 한다. 훌륭한 리더십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도 분명 호랑이 감독형 리더십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이클 조던이 스티브 커를 때렸다는 뉴스가 나갔을 때와 최근 드레이먼드 그린이 조던 풀을 때렸을 때의 기사와 여론의 온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에 대해 올드스쿨 농구인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을 때, 팬들이 실망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때로 선수들을 대하던 마이클 조던의 리더십은 구시대 유물처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NBA는 선수만큼이나 많은 대규모 스태프의 의견을 받아들여 분업을 하는 시대다. NBA 산업 규모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해졌고, 30개 구단의 5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전투를 치르는 만큼 연구하고 파악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그 중에는 본인들이 평생 본 적 없는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 자료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앞서 언급했듯 갈수록 낮아지는 연령대도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선수들은 이르면 20대 초반에 수백억을 버는 갑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끊임없이 열심히 몸 관리를 하고 훈련을 해야 할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 스티브 내쉬 같은 레전드 포인트가드도 선수들 마음을 얻지 못하면 실업자가 되는 시대다. 슈퍼스타에게만 맞춰줘서도 안 되고, 12번째와 13번째 선수에게도 최선을 다할 이유를 만들어주고 팀에 녹아들게 해줘야 한다.
멤피스의 타일러 젠킨스 감독은 이 부분과 관련해 꽤 많은 강연을 가진 인물이다. 그만큼 젊지만, 실력만큼은 업계에서 알아준다고 볼 수 있다. 평소 10여 명의 선수를 고루 기용하지만, 승부처에서는 매치업에 맞춰 주전을 벤치에 앉히는 등 과감한 선택을 할 줄 알며, 그 부분에 대해 선수들에게 ‘왜’를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에게 믿음을 얻는 것이다. 그래야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어쩌면 나날이 ‘비즈니스’가 우선인 대기업화가 되어가는 NBA의 현실 속에서 ‘신뢰’이니 ‘포용’이니 하는 따뜻한 단어를 과제로 내주는 것은 아이러니할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세대 갈등이 더 심해지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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