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尹의 두 번째 전쟁
창에 찔린 야수처럼 날뛴다
'싸우는 대통령'이 숙명일지도
지난해 3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정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을 때 나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2020년대 대한민국이 그래도 국가 타락을 피해 살아남는다면 그 공의 일정 부분은 윤석열의 '2년 전쟁'에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때 실업자였던 윤 총장이 지금 대통령이 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 해서 검찰총장 윤석열이 치렀던 전쟁의 의미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윤석열 총장이 문재인 정부와 엇나가는 데 결정적 구실이 된 조국 일가 비리는 상당 부분 법의 단죄를 받았고 조국 본인은 선고를 앞두고 있다. 윤 총장이 눈감아줬다면 조국은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국이 아니더라도 그가 표상하는 위선과 파렴치의 세계에 속한 누군가가 지금 이 나라를 이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상이 그렇게 굴러갔다면 그 후로 우리가 알게 된 많은 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장동도, 월북 조작도, 월성 원전도 묻혔을 것이다. 나라가 망할 때 꼭 요란스럽게 망하지는 않는다. 얼빠진 사회는 아주 평화적으로, 순조롭게 망하기도 한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더 행복하고 안전해진다. 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이 이상해졌다'고 느끼면서도 누가 '세상은 늘 이랬다'고 윽박지르면 반박하지 못한다. 국가가 망할 때는 그렇게 된다.
윤석열 총장은 법이 농락되는 상황을 못 참아 싸웠고 그 투쟁을 동력 삼아 대선에서 이겼으며 마침내 나라를 타락의 문턱에서 구했다는 것이 윤 정부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지난 대선의 기본 서사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 윤 정부 태동이 과연 나라를 구했는가.
집권 8개월 차 윤 정부가 처한 상황은 창 하나를 들고 거대한 괴수를 상대하는 투우사처럼 위태위태하다. 대선 이후 바뀐 것은 한 줌의 정부 엘리트들뿐이다. 국가 타락에 동참했거나 눈감았던 세력들이 '독재'를 운운하며 가두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조직력이 뛰어난 민주노총은 화물노조 파업에 이어 어제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이 노리는 것은 뻔하다. 윤 정부를 무릎 꿇리려는 것이다. 야당 대변인은 유사 언론과 손잡고 거짓말로 한 달 동안 나라를 흔들었다. 전모가 밝혀진 뒤에도 가해자들은 피해자인 법무부 장관 현관문 도어록 해제를 시도하고 그 과정을 생중계했다.
대장동 주변 인물들이 죄다 구속된 지금도 검찰이 '몸통'으로 지목된 야당 대표를 조사할 수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이 다수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탄압용 수사'라는 답변이 더 높게 나온다.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조사할 수 없고 국민 다수가 드러난 사실 해석에 난독증이 있다면 그만큼 나라의 병이 깊은 것이다. 지난 대선은 국가 타락이라는 괴수를 해치운 것이 아니라 상처 입혀 성질만 돋운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 속 자신의 소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와 정치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소명은 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는 아닌 듯하다. 우리 시대의 모순은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치면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링컨이 되기를 언명하고 있다. 시대의 모순으로 곪아 터진 곳곳의 환부에 칼을 대는 대통령 말이다. 환부는 정치 시스템에도 있고 노동구조에도 있고 교육에도 있고 국민의 의식 속에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자유와 연대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면 '두 번째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그가 검찰총장으로서 치른 첫 번째 전쟁은 할 일을 하다 '잘리면' 그것으로 끝나는 전쟁이었다. 꼭 이길 필요도 없었다. 두 번째 전쟁은 사방이 전선이고 임기 중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싸움을 회피하거나 패배할 땐 대한민국도 진다는 것이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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