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연좌제 걱정해 꽁꽁 숨겨온 옥살이”…74년 만의 무죄

박미라 기자 2022. 12. 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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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희생자’ 아닌 생존수형인 중 첫 직권재심 사례
합동수행단, 4·3특별법 아닌 형사소송법으로 재심
박 할머니 “고문 받고 1년 징역”
6일 제주지법에서 4·3 생존 수형인 박화춘(95) 할머니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화춘 할머니(95)가 7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특히 박 할머니는 연좌제 등으로 가족이 피해입을 것을 우려해 옥살이 사실을 평생 숨기고 살았던 탓에 4·3피해신고도 하지 않았다. ‘4·3희생자’로 등록되지 않은 생존수형인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지법 형사4-1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6일 생존 4·3 수형인 박화춘 할머니에 대한 직권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 할머니는 4·3 당시인 1948년 12월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 등에서 옥살이를 했다.

박 할머니는 1948년 4·3 당시 마을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서귀포시 강정리 밭에서 숨어 지냈다. 하지만 친척의 제사가 있던 12월 어느날 밤 토벌대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체포돼 끌려갔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등 고문을 당했고, 마지못해 “산사람(무장대)에게 보리쌀을 줬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박 할머니는 1948년 1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받아 3살 딸과 함께 전주형무소에서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자 딸을 보육시설에 맡겼고 출소하면서 딸을 데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박 할머니는 억울한 옥살이였지만 수형 사실이 가족에게 문제가 될까봐 4·3 피해 사실을 꽁꽁 숨긴채 살아왔고, 4·3희생자 신청도 하지 않았다. 박 할머니의 수형사실은 최근 이뤄진 4·3평화재단 추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은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은 고문과 불법 구금 등 불법적인 수사를 당했고, 설령 피고인이 보리쌀 2되를 주었다고 할지라도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며 재판부에 무죄 판결을 요청했다.

특히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이날 제주방언으로 “할머니, 잘못한 거 어수다. 4·3사건 때 할머니 잘못헌 것도 어신디 사람들이 막 심엉강으네 거꾸로 돌아매고 허영으네 막 고생 많아수다. 제가 재판장님한티 할머니 잘못한 거 없댄 잘 고라시난예 아무 걱정 허지 맙서예. 경허고 너미 부치로왕 안해도 되어마씨. 그저 마음 편안허게 가지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됩니다예(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데려가서 거꾸로 매달고 해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한 것 없으니까요)”라며 할머니를 위로했다.

무죄가 선고된 후 박 할머니는 “(나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 너무 고맙다. 할많이 많은데 할 수가 없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이날 방청석에는 박 할머니 가족과 오영훈 제주지사, 4·3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해 무죄 판결의 기쁨을 나눴다.

합동수행단은 그동안 4·3희생자 결정이 있는 수형인에 대해서만 4·3특별법에 의한 직권재심을 청구했으나 박 할머니의 경우 고령인 점을 감안해 4·3희생자 결정이 되기 전 형사소송법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합동수행단이 19번째로 청구한 직권 재심에서 희생자 30명에 대해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현재까지 직권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한 수형인은 모두 521명이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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