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ILO 공문, 정부 평가절하와 달리 “결사의 자유 침해” 명시
‘화물기사 노동기본권 보장’ 권고 강조
“‘의견 조회’ 아닌 사실상 협약 위반 판단
법과 원칙 강조하는 정부, 협약 지켜야”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2일 한국 정부에 보낸 공문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결사의 자유 침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4일 이 ‘개입’(intervention) 공문을 공개하지 않은 채 “의견조회 요청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국제노동기구가 고용노동부에 강한 어조로 결사의 자유 협약 준수를 권고했다는 점에서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법과 원칙’을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가 국제협약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명의의 개입 공문을 보면, “국제노동기구 감독기구는 운송서비스 및 유사한 부문의 업무복귀명령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간주하고, 평화적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 형사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고 명시돼 있다.
감독기구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와 같이 회원국 정부가 협약을 위반하는지 판단하는 기구인데, 감독기구의 기존 판단에 근거해 한국 정부가 시멘트 분야 화물기사들에게 형사 제재를 전제로 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결사의 자유 침해’라고 강조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최근(지난 4월) 한국에서 발효된 제87·98호(결사의 자유) 협약에 기반 결사의 자유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관점에서 이 가이던스(지도, 공문의 내용을 지칭)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개입 절차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 4일 국제노동기구의 ‘개입’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정부는 그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사무총장 명의의 공문에 해당하는데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노동부 역시 “노동계가 국제노동기구에 문제제기하면, 해당국에 사실을 알리는 통상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입 공문은 ‘단순한 의견조회’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국제노동기구의 입장이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한 점 등을 고려하면, 국제노동기구가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 협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성희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은 “국제노동기구에서 한국 정부가 비준한 결사의 자유 협약을 언급하면서, 이 원칙에 따른 가이던스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라고 한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며 “화물연대 파업 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한 윤 대통령이 결사의 자유 협약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입법·행정·사법 모든 영역에서 준수돼야 한다. 화물연대 조합원이 낸 업무개시명령 취소 처분 소송에서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른 처분이 적법했는지뿐만 아니라, 결사의 자유 협약(제87·98호)에 위반되는지도 재판 과정에서 심리하게 된다.
또 정부가 협약을 위반해도 국제사회에서 받는 명시적인 불이익은 없지만, 한국 정부도 국제노동기준 준수가 국제사회에서의 ‘국격’과 ‘통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난해 2월 국회가 기본협약 3건의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이후 노동부는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으로, 대외적 측면에서는 국제사회와의 약속 이행을 통해 국격 및 국가 신인도 제고에 기여하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나아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등 노동 조항이 담긴 자유무역협정 관련 분쟁 소지를 줄여 통상 리스크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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