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드론으로 몰래 찍어도 된다? “영장없이 시민감시 우려”

정인선 2022. 12. 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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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 통과
전송요구권·자동 의사결정 거부권 등엔 “부족하지만 환영”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론 등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 관련 규정에 예외를 허용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정보인권 단체들이 “수사기관이 시민들을 몰래 감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셈”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긴 기업에 과징금을 매기는 기준이 유럽연합 등에 비해 낮게 책정된 데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이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 5일 저녁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의결된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엔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도입해, 특정 기업·기관이 가진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개인)의 요구에 따라 다른 사업자한테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러 서비스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자산 관리나 건강 관리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시민 개인의 복지 수혜 자격이나 신용 등급 등이 인공지능 등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 당사자가 이 결정을 거부하거나 결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 정보인권·시민단체들은 6일 공동으로 성명을 내어 ”정부가 개정안의 취지로 정보주체의 권리 강화를 내세웠지만, 권리 보호 수준이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동의·계약·법률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보주체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에 의한 완전 자동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도록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반면, 이번 개정안은 이용자에게 거부권이 있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 의사결정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단체들은 “특히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이 유럽연합에 비해 정보주체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더욱 떨어진다”며 ”왜 한국 시민들의 권리가 유럽연합 시민에 비해 약하게 보호돼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 관련 규정을 도입하면서 만든 예외조항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사람 등을 촬영할 경우 불빛이나 소리 등을 통해 촬영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 촬영 사실을 표시하거나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예외를 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정보인권·시민단체들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드론과 같은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를 활용해 대상자가 모르게 감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며 “이는 법원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이 시민들을 몰래 감시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통신 감청에 버금가는 중대한 개인정보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카메라 성능과 얼굴 인식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침해의 정도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보보호법을 위반한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국제 기준에 비춰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처음 발의한 개정안에는 과징금을 현행 ‘관련 매출액의 3%’에서 ‘전체 매출액의 3%’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이날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안에는 ‘전체 매출액 가운데 위반 행위와 관련이 없는 매출액을 제외한 매출액의 3%’로 축소됐다. 정보인권·시민단체들은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법은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4%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등 국제 사회의 기준이 높아졌지만, 국내에선 (과징금 기준이) 기업들의 로비에 밀려 원점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행 규정인 ‘관련 매출액’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인데다, 무엇이 관련 매출액인지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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