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송중기가 쥐락펴락하는 얼룩진 한국 현대사

이정희 입력 2022. 12.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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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TBC <재벌집 막내 아들>

[이정희 기자]

윤현우(송중기)는 죽었다. 

해외에 숨겨진 순양 자산을 찾아오라는 신임 회장의 명령, 그와 함께 재무팀장으로의 승전, 흙수저로 태어나 변기 뚜겅을 갈고, 골프채로 맞으며 견뎌왔던 시간이 이제야 빛을 보려나 하는 시점, 이국의 벼랑 끝에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재벌가 순양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비록 서자이지만 엄연히 아버지는 순양 진양철 회장의 아들이었다. '재벌집 막내 아들'이 된 윤현우, 아니 이제 진도준(송중기 분)은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JTBC <재벌집 막내 아들>이 이와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로 눈길을 끌고 있다.

누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재벌집 막내 아들
ⓒ JTBC
 
무엇보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가 누구인가를 밝히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진도준이 된 윤현우는 범인을 찾는 일보다 순양에 맞서는 일에 초점을 둔다.  
 
북한의 부자 세습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왜 우리나라 재벌가의 세습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나요? 

극중 진양철 회장(이성민 분)은 8회말 '장자 승계'의 원칙을 뒤집어엎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일군 진양의 기업들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경영하도록 한다. 물산은 큰 아들 진영기(윤제문 분)에게 주고, 화재보험은 둘째 진동기(조한철 분)에게 주고, 백화점 등 물류는 딸 진화영(김신록 분)에게 주었다. 

자동차 사업에 집착이라 할 만큼 애착이 큰 진양철 회장의 마음을 진도준이 읽었다. 순양운수로 시작해 석유, 화학, 기계, 소비재, 유통에 이르는 대기업을 일군 진양철 이지만 라이벌 대영 그룹 회장이 대놓고 말하듯 그의 자식들 중 진양철만한 인물이 없다.

하지만 진양철은 무리해서라도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했고, 장자 승계가 아니더라도 그가 일군 재산을 능력과 상관없이 고스란히 자손들에게 물려주려 하였다. 그리고 현재에 죽음을 맞이한 윤현우는 능력없는 재벌가의 자손들이 벌이는 권력 승계를 둘러싼 암투의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결국 윤현우 죽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순양'이라는 재벌의 태생적 존재를 먼저 파악하는 게 급선무 아닐까.  
 
 재벌집 막내 아들
ⓒ JTBC
 

하지만 윤현우는 자신의 죽음에만 천착하지 않았다. 인생 2회차 과거로 진도준은 윤현우 시절 자신을 키워준 가족의 집을 찾는다. 

아버지가 다니던 아진 자동차가 IMF로 부도가 났다. 어머니는 노조 시위 현장에서 폭행을 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TV로 보고 쓰러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폭행당해 머리를 다친 아버지는 더는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갈 꿈에 부풀던 윤현우가 가장이 되어야 했다. 

현재의 진도준은 아진자동차 고용승계를 통해 어머니를 살리고, 가족을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진양철 할아버지가 선물로 준 '분당 땅' 매각 자금을 기반으로 순양 자동차 인수전에 뛰어든다. 그가 그 전쟁에서 원한 건 단 하나. 아진자동차의 고용승계다. 

'정도 경영'을 기업 슬로건으로 내세운 진양철에 진도준이 묻는다. 고용승계가 정도 경영이 아니냐고. 하지만 진양철의 생각은 다르다. 
 
머슴을 키워가 등따숩고 배부르게 만들면 와 안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정리해고 별 거 아니다.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알려주는 기다. 정도 경영이라 캤다. 내한테는 돈이 정도다. 

그래도 진도준은 포기하지 않고 자금을 대주는 조건으로 고용 승계를 내세워 아버지의 직장을 살려낸다. 거기에 어머니 가게가 속한 건물까지 사서 예전 집으로 달려갔지만 그를 맞이한 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아버지의 직장을 살려내면 어머니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고자 모아둔 돈으로 순양생활과학 주식을 샀고, 순양생활과학은 기업 청산 대상이 되어버렸다. 실낱같은 희망이 종잇조각이 되어버리자 어머니는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실낱같은 희망을 종잇이조각으로 만든 이면에는 진양철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 있었다. 자기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개미 투자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순양에 '자본주의적 수단'으로 대적하는 진도준
 
 재벌집 막내 아들
ⓒ JTBC
 

순양이라는 재벌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그들이 기업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누구를 제물로 삼았는지, 그리고 그 자산을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또 누구의 목숨값을 희생양으로 삼았는지 진도준은 정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진도준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수단'으로 순양에 대적한다. 아진 자동차 인수가 좌절되자, 순양 자동차의 인수 대금을 대는 조건으로 고용승계를 내세우는 식이다. 그리고 상암 난지도 개발 새서울 타운 개발을 순양과 경쟁에 나선 진도준은 진양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양철의 사위 최창제의 서울시장 당선을 돕는다. 

물론 현대사의 흐름을 꿰뚫고, 거기에 자금력까지 가진 진도준이라지만 당대 최고의 재벌 순양을 상대로 한 싸움이 만만치는 않다. 마치 장기판에서 장군하면, 멍군하듯이, 진도준이 아진 자동차 인수를 하려하면, 순양이 그걸 막고, 상암 난지도 개발을 하려하면, 순양이 자신들의 권력과 자금력을 이용하여 이를 막는 식이다. 

잃을 것이 없는 자와, 잃은 것이 많은 자의 싸움에서 누가 더 위태로울까.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들을 쥐락펴락하는 진도준, 그의 대리전을 통해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굴절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구김이 펴지는 쾌감을 맛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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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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