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대처와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이균성 논설위원 입력 2022. 12. 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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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노조와 4차산업혁명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2017년 3월 우리 매체는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 회장을 초청해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4차산업혁명’에 관한 특강을 마련한 바 있다.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한 제조업을 각종 IT 기술과 접목시켜 혁신함으로써 산업 기반을 더 튼튼히 한 모범사례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닝 카거만은 독일 제조업을 부흥시킨 ‘인더스트리4.0 정책’의 핵심 고안자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헤닝 카거만의 강연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 기반의 혁신을 논하는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에 관해 언급한 점 때문이다. 그의 강연을 듣고 ‘4차 산업혁명, 노조 참여가 중요하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었다. 카거만은 “인더스트리4.0의 핵심 목표는 생산의 효율성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효율성보다 기업이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스트 팔로어가 되기보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조직의 기동성을 높이고 정부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듣던 이야기다. 남달랐던 것은 ‘기업 조직의 기동성’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독일에서는 노조가 인더스트리 4.0 기획 초기단계부터 참여했고, 그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 그는 이 말을 그 날 강연에서 세 번씩이나 반복했다.

화물연대 16개 지역본부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 사흘째인 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신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2022.6.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기업 조직의 기동성’은 ‘노동의 유연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노동 유연성이 높아지면 해고가 쉬어져 기업의 기동성이 좋아지지만 노동자의 근로 안정성은 취약해진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학살에 가까운 해고를 단행한 게 대표적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미국 기업들과 달리 노동자에게만 피해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구해볼 가치가 큰 것이다.

쉬운 길을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게 가능한 일이겠느냐는 의문도 품을 수 있겠지만, 카거만은 “노조가 초기부터 목소리를 낼 환경을 만들자 노조가 먼저 변했다”며 “단순 임금협상을 넘어 새 일자리에 맞게 재교육 받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등 현재보다 미래를 설계하는 쪽으로 더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4차산업혁명의 세 기둥 가운데 한 기둥이라 보기 때문이다.

카거만의 강연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 최재유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 주영섭 당시 중기청장이 패널로 나서, 기술 혁신과 함께 그것으로 인한 노동의 배제 혹은 소외, 그리고 이를 타개할 재교육 등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노동의 미래에 대해 정부와 노사가 함께 그림을 그리다보면 현재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대목이 특히 부러웠었다.

5~6년 전 이야기를 소환한 것은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 때문이다. 연관 산업에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와 노조 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데 있다. 독일은 노조를 4차산업혁명의 세 기둥 가운데 한 기둥으로 여기는 반면 우리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물연대의 상급 노조인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6일 오후 총파업을 진행키로 했고 ‘윤석열 정부 노동 탄압 분쇄!'를 구호로 내걸었다. 기술은 광속으로 발전하고 그리하여 ‘4차산업혁명’이 기업과 각국 경제의 존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의 노사정은 수십 년 동안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북 당국자의 적대적 발언 못잖게 정부와 노조 사이의 발언도 거칠다.

이 글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 차종·품목 확대 등을 둘러싼 노조와 정부의 줄다리기와 협상 과정에서 어느 쪽이 더 문제가 있는 지를 가리고자 쓴 게 아니다. 이 갈등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3년에도 비슷하게 표출된 바 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치의 당파성을 떠나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걸까.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질 품이 있다면 카거만의 이야기는 소중하게 들린다. “노조가 초기부터 목소리를 낼 환경을 만들자 노조가 먼저 변했다.” 왜 독일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하지 못하는 걸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 소중한 목소리를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조는 괴물도 아니고 북핵도 아니다. 그런 인식으로는 카거만의 이야기는 공염불일 뿐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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