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 SPV, ASF, GVC, VC…정확히 뭔지 아시나요?

장슬기 기자 입력 2022. 12. 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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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연대 학술대회, 국어기본법 취지대로 정부·언론에 무분별한 로마자 표기 지적 "한글 표기 원칙 지키자" 한목소리
"정부, 언론, 학자, 시민단체 모여 로마자 표기 논의해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ODA, SPV, ASF, GVC, VC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가 지난해 9월 조사기관 티앤오코리아에 의뢰해 조사한 '공공언어 속 외국어의 국민 이해도와 수용도 조사' 결과, 주요 로마자 약어에 대한 국민 이해도가 가장 낮은 단어들이다. 해당 단어들의 국민 이해도는 각각 ODA(공적개발원조) 7.4%, SPV(기업유동성지원기구) 8.4%, ASF(아프리카돼지열병) 8.7%, GVC(국제공급체계) 9.7%, VC(벤처투자사) 10.4% 등으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1명 정도만 이해하는 단어들이지만 정부기관 보도자료나 언론보도에 그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 주요 로마자 약어에 대한 국민 이해도 조사 결과. 자료=한글문화연대

김명진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는 지난 2일 한글문화연대 주관으로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개최한 '2022 쉬운 우리말 쓰기, 공공언어 개선 학술대회'에서 “2005년 제정한 국어기본법은 그동안 공문서에서 한자나 로마자 등을 한글과 혼용하던 글쓰기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다”며 공공영역과 언론에서 해당 법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자나 로마자로 적은 용어들이 등장할 경우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항은 “공공기관등은 공문서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상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만들 때 한글을 기본으로 작성해야 하고 예외적으로 외국 글자를 병기할 수 있다.

한글문화연대가 지난 1~6월 조사한 결과 중앙행정기관 보도자료에서 사용한 로마자 용어 상위 5개는 FTA(427회), TF(394회), R&D(327회), EU(302회), AI(179회) 순이다. 한글문화연대는 이러한 모니터링 결과를 해당 부처에 공유하면서 국어기본법 위반한 보도자료 작성자에게 개선을 요구해왔다.

▲ 중앙행정기관 보도자료에서 사용한 로마자 용어 상위 100개 중 일부. 자료=한글문화연대

김 부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언론인과 국어학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우리말 약칭 제안 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로마자 약어로 된 국제기국 등 이름을 고려해 우리말 번역 풀이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것과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야 하는 것 등을 구분하고 우리말 약칭 제정을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이어 “시민단체 활동과도 연계할 수 있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에서 나설 수 있다면 '정부-언론 외래어 공동심의회'에서 늘 수행하는 업무로 규정해 별도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부대표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우리말 약칭을 제안하는 것보다 공신력이 있을 수 있다”며 “언론인과 공무원 등이 함께 조사하고 논의해 언론보도에도 적용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U(유럽연합)와 같이 로마자 약칭과 한국어 풀이가 익숙한 단어도 있지만 HUPO(Human Proteome Organization, 세계단백체학회) 등과 같이 낯선 단어도 있기 때문이다.

줄임말을 쓰는 경우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도 이날 발표에서 “거의 정착된 번역 줄임말 '(미) 연준'도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의 줄임말임을 안다”며 “'FOMC'라는 암호 같은 로마자 줄임말을 쓰는 대신 '(미) 연공위' 또는 '(미) 공시위' 아니면 길게 '시장위원회'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줄임말로 만들어 언론에서 꾸준히 쓴다면 곧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나 언론에서 수많은 외래 고유명사의 로마자 줄임말을 과도하게 쓰는 것은 처음부터 한국어 번역 줄임말을 만들고자 하는 뜻도 노력도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나 언론 소수의 담당자들이 최선의 형식을 제기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정부 문서나 언론 기사를 보는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들은 더욱 쉽고 편하며 평등한 한국어 생활을 즐기고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알파벳. 사진=pixabay

국어기본법 취지에 맞게 변하기 위해 언론의 노력도 필요하다. 언론사의 경우 써오던 관행에 따라 로마자 약어 등을 쓰는데 이에 대한 개선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경우 서울신문 어문부 전문기자는 몇몇 언론사의 스타일북을 조사해 발표했다. 서울신문의 경우 정식 명칭을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처음 이후에는 약칭으로 적을 수 있고 약칭이 관행으로 굳어져 의미 전달에 불편이 없을 땐 처음부터 약칭을 쓸 수 있다. 외국어의 경우 우리말로 번역된 이름을 쓰는데 이때 약어는 번역된 한국 명칭 뒤에 괄호를 잇대어 표기하고 그 뒤에는 약어로만 쓸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세계권투평의회(WBC)는 최근”이라고 표기한 다음부터는 “WBC는~” 이런 식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서울신문은 널리 알려진 기구·단체의 약어는 한글로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 아동구호기금(UNICEF)는 유니세프로, UN은 유엔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기자에 따르면 매일경제 등 대다수 신문사 스타일북은 서울신문의 그것과 거의 똑같았다. 국어기본법에서 처음 표기 이후에는 로마자 약칭만 쓰거나 '알려졌다'는 단서가 있지만 해외 단체명 등을 약어로 표기하는 것 등은 한글 표기를 원칙으로 하는 것과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기하자는 취지에는 다소 어긋나는 지점이다.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만든 한글로 표기하는 원칙이 잘 정착된 곳이다. 한겨레 완전원고수첩(스타일북)을 보면 알파벳(로마자)은 한자 등과 마찬가지로 국어사랑, 말글 일치 정신에 따라 본문이나 제목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곡 필요한 경우 예외로 한다. 그럼에도 제목에서 이러한 예외는 줄여나간다고 규정하고 있다. 번역하기 어려운 말은 알파벳 발음으로 읽어 IBM을 '아이비엠'과 같이 한글로 표기한다. 국내단체로 그 말이 익숙하더라도 절대 로마자 표기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다. KDI 대신 한국개발연구원, MBC 대신 문화방송으로 적는 식이다. 다만 최근 일부 기사에서는 한글로 적은 뒤 괄호 안에 알파벳을 병기하기도 한다.

경향신문은 한겨레만큼은 아니지만 한글 표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20년 개정한 스타일북을 보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어 약자는 금물”이라고 규정하면서 불필요한 경우 영어 약자를 쓸 필요도 없다고 했다. 다만 IMF, WTO 등 널리 알려진 약어는 써도 무방하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다만 최근 스타일북을 개정했지만 이 원칙이 현장 기자들에게 모두 받아들여져 기사에 충분히 나타나진 않고 있다.

이 기자는 “국어단체, 시민단체, 언론학자, 국어학자, 기자 등이 참여해 가칭 '언론매체 언어협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나와 있고 언론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꿀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했다.

[관련기사 : 그래 바꿔보자, 로마자 대신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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