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쓴 나라예산 방치 : 미래를 망치는 불용(不用)

서영민 2022. 12. 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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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주체 : 정부

정부 공권력의 경제적 본질은 세금 징수입니다. 부자한테 많이 걷습니다. 우선 잘 버는 기업입니다. 특히 나라 조세 수입의 3대 원천인 법인세는 압도적으로 대기업 몫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상위 1% 기업이 82.7%를, 0.1% 기업이 60.9%를 냈습니다. (국민의 힘 윤창현 의원실)

고소득 개인에게서도 더 걷습니다. 국세청 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근로소득세는 상위 10%가 73.1%를 냈습니다. 법인세, 근로소득세와 함께 3대 세원인 부동산 관련 세금(재산세, 종부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한테 더 걷습니다.

정부 역할의 경제적 본질은 예산 집행입니다. 이 예산 집행 대상은 징수 대상과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씁니다. 고소득자보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씁니다. 자산 많은 사람보다는 집 없는 사람을 위합니다.

세금 걷는 곳과 예산 쓰는 곳이 이렇게 다릅니다. 나라 살림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합니다. 이게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약 100년 가까이 현대 자본주의가 동의하는 정부 역할입니다. 시장이 한 일을 정부가 조정합니다. 경제 순환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해섭니다. 불평등해 보이는 정부의 분배기능이 '기업은 상품을 더 만들고, 개인은 소비를 더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물론 진보·보수 정부의 철학에 따라 그 정도에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을 ‘소비’, 기업을 ‘생산’의 주체라 하고, 정부는 ‘분배’의 주체라고 부릅니다. 그 분배의 방식이 '예산의 집행'인 겁니다. 유능한 정부는 곧예산 잘 쓰는 정부입니다.

■ 869개 사업에서 24조 원 넘게 못 썼다…‘심각한 예산 비효율’

KBS는 정부가 예산 잘 쓰는지 살펴봤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최근 3년 치 예산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쓰겠다고 약속해놓고 못 쓴 예산'을 찾아봤습니다. 반복되는 예산 미집행에 주목했습니다. 낮은 집행률이 반복되면 정부 기능상의 문제입니다. 구조적 집행 부진을 정부가 충분히 유능하지 못해 방치한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류할 일관된 기준도 세웠습니다. 논의 끝에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예산 집행률이 70% 이하인 사업을 추렸습니다. 모든 예산 항목을 부처별로 [회계기금> 프로그램 > 세부사업 > 내역사업] 단위까지 내려가 따져봤습니다.

총계기준으로 모두 869개 내역사업이 이 기준에 들어왔습니다. ‘불용률이 높은 예산’을 전수 분석을 통해 추렸으니 <집행 부진 예산>입니다.


이 869개 집행부진 사업의 2021년 예산 규모는 47조 원에 달했습니다. 평균 집행률은 48%에 그칩니다. 무려 24조 5천억 원을 못 썼습니다.

2022년 예산은 47조 3천억 원입니다. 집행률은 7월 말 기준으로 23.4%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11조 1천억 원만 썼고, 36조 원 이상을 아직 못 썼습니다. 올해도 거대한 집행부진이 예정된 겁니다.

# GTX-C
GTX-C 노선 사업은 서울 창동역사 문제로 멈춰 섰습니다. 주민들이 역을 지하화해달라며 공익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산은 21년과 22년 두 해 동안 1,500억 원 이상 확보했는데, 20억 원밖에 못 썼습니다. 7월까지 현황이지만 연말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예상이 가능한 이유는 예산의 집행 절차 때문입니다. 예산은 엄격히 정해진 요건을 만족해야 쓸 수 있습니다. 선후 절차가 있습니다. GTX-C 노선 경우엔 감사원 공익감사 절차 이후 협상을 끝내야 예산을 씁니다. 지금은 두 절차 사이에 KDI 민자 적절성 검토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건 내년 2월에 결과가 나옵니다. 이후에야 정부는 입장을 정할 겁니다. 그 뒤에 민간 사업자와 합의를 합니다. 그래서 국토부는 '지금 단계에선 예산을 쓸 방법이 없다'고 답합니다.

#신분당선 호매실 연장구간
신분당선 호매실 연장구간도 사업이 극초기 단계입니다. 민자철도이지만, 연장노선은 나서는 민간 사업자가 없어 국비 사업이 됐습니다. 2년간 170억 원 예산이 반영됐지만, 실제 집행은 12억 원. 역시 국토부 설명을 들어보면 사업 진행 자체가 늦어지고 있어서 마찬가지로 올해 예산 추가 집행은 쉽지 않습니다.

순서대로 〈GTX- C〉, 〈신분당선 호매실 연장구간〉, 〈덕산 온천 휴양마을〉 예산 집행실적


#덕산 온천 휴양 마을
대형 건설사업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역 문화 사업도 불용률 높은 사업이 부지기수입니다. 백제 문화 이음길, 신안 기독교 체험관, 예산 온천 휴양마을 사업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산의 덕산 온천 휴양 마을은 2년간 25억 원의 국가 예산이 배정됐는데 한 푼도 못 썼습니다. 문체부에 문의하니 ‘사업에 민간 시설과의 차별성, 공공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 안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설계하라고 했다’고 답했습니다. 새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예산 집행은 멈춥니다. 25억 원은 전액 불용처리 예정입니다.

■ '안 쓰면 좋은 것?'…아닙니다, 비효율은 미래를 망칩니다

안 썼으면 아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 예산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산 불용은 절약이 아닙니다. 기회비용입니다. 정부가 조정 역할을 약속은 했는데, 실제로는 안 했다는 의미입니다.

안 쓸 예산은 배정을 안 해야 하고, 배정했다면 써야 합니다. 아니면 반드시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할 일을 충분히 안 한 비효율입니다. KBS는 이 비효율을 ‘집행부진 예산’으로 정리했고, 그 규모가 지난해 기준 24조 원이 넘은 겁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효율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나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보수 정부인 만큼 쓰기로 한 예산은 더 잘 써야 합니다. 그런데 KBS가 집행부진 예산으로 분류한 869개 사업의 내년 예산은 큰 틀에서 변화가 없었습니다. 47조 원 대에서 45조 4천억 원으로 3% 정도 줄었을 뿐입니다.

그 대신 다른 예산을 많이 줄였습니다. 이 때문에 비판도 받았습니다. KBS가 심층 보도 한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KBS 등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다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목돈을 마련해주는 내일 채움 공제 같은 사업 예산도 반 토막 났습니다. 공공임대주택 사업 관련 예산도 크게 깎았습니다.

이 사업 감축 규모는 다 합해봐야 6조 5천억 원 수준입니다. KBS가 파악한 비효율, 24조 원의 집행부진 예산 가운데 4분의 1 정도만 확보했다면 안 줄였어도 되는 예산입니다.


[연관 기사]
월 27만 원…“소득 보장을 위한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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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효율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쓸 수 없어 안 쓰게 된’ 예산이 있다면 제때 파악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더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합니다. 정부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섭니다. 이게 안 되면 정부 비효율이 발생하고, 그만큼 국민경제의 장래가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방치하면 안됩니다.

■ 못 쓸 이유가 확정된 예산은 방치하지 말아야

집행부진의 이유도 살폈습니다. 869개 집행부진 사업을 담당하는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 집행 저조 이유를 근거로 사유별로 분류했습니다. 1위는 코로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회의 못 하고, 출장 못 가고, 정책 수요가 줄어서 못 쓴 예산이 많다는 겁니다. 다음은 사업 지연입니다. 앞서 살펴본 건설, 문화사업의 과정에서 설계 지연이나 민원, 공사비 증액 이유로 지연된 사업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유행이나 사업 지연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못 썼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음, '못 쓴 예산을 그냥 내버려 뒀다'입니다.

정부 공백이 발생하지 않게 조속히 예산을 회수할 수는 없었을까, 왜 연초에 못 쓸 것이 확실해진 예산을 연말까지 내버려 두어야 하냐는 문제 제기입니다. 다시 한번, 나라 예산은 방치하면 안됩니다.

감액 추경 하면 됩니다. 이걸 더 잘해야 예산 효율이 높아집니다. 정부가 더 유능해집니다.

문제는 주어진 법률의 제약입니다. 사업마다 이해 관계자가 많습니다. 배정된 예산을 강제로 줄이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받은 예산 안 뺏기려는 부처와의 조율은 쉽지 않습니다. 취재 중에 접촉한 정부 실무진 설명이기도 합니다.

■ ‘공은 국회에’


결국, 국회 역할이 중요합니다.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예산안을 심사해 확정합니다. 이 국회가 ‘줬는데 못 쓰면 내년에 줄인다’는 원칙을 더 확고히 해야 합니다. '집행부진 사업'의 비효율을 시스템 차원에서 줄이는 법 제도의 마련이 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임은 국회의 몫입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정보 공개’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집행 부진 사유와 사업을 세세하게 실시간으로 공개해서 시민사회나 언론의 감시를 받게 하라는 겁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업들이 사각지대에서 감시 영역으로 들어오면,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쓸 수 있게 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역시 국회가 힘쓰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국회는 올해 규정된 예산안 처리기한마저 넘기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있습니다. 예산 규모가 큰 사업 위주로 살피다 보니 세밀한 평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회가 효율을 높이기는커녕, 효율을 더 낮추고 있다는 얘깁니다.

〈다음 이야기〉 못 쓸 예산 타가는 의원님부터 멈춰주세요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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