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 알린 ‘목자의 들판’ 서… 세속과 구별된 성결을 다짐하다
■ 이스라엘 성지에서 성탄의 뜻을 찾다 - <上> 베들레헴과 나사렛
- 목자들의들판교회
천사들이 목자들 앞에 나타나
“오늘 구주가 나셨다” 알린 곳
- 예수탄생교회
고개 숙이고 ‘겸손의 문’ 통과
순례객들 ‘은색 별’에 입맞춤
- 요셉의동굴 · 나사렛빌리지
예수 동굴집터 취재진에 개방
“성육신 자취 보니 가슴 벅차”
베들레헴 · 나사렛 = 글 · 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오늘 저녁 베들레헴 성탄 트리 점등식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트리에 불이 켜지고 폭죽이 울렸습니다.”
지난 4일(한국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한인교회 담임 목사인 이강근 박사가 SNS를 통해 사진과 함께 소식을 알려왔다. 예수그리스도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시가 트리에 불을 밝힌 것은 전 세계가 성탄절 시즌에 들어갔음을 알려준다.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이스라엘을 찾아 예수의 생애 흔적을 살펴보며 성탄 의미를 새기는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한국과 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순례엔 경기 용인시의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 목사를 비롯한 목회자들이 동행했다. 히브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대학연구소장으로, 30여 년 동안 중동 지역 성지 답사를 해 온 이 박사가 안내했다. 그는 “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뜻깊은 여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첫 방문지인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시이다. 1994년 오슬로협정으로 무슬림이 통치하는 지역이 됐는데, 세계 기독교인들의 순례로 도시 경제를 지탱하는 역설(逆說)을 품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순례객들이 끊겼으나 다시 몰려들고 있음을 현지에서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아랍 마을 벧 사훌에 자리한 목자들의들판교회(Field of the Shepherds)를 먼저 찾았다. 이름 그대로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을 알려준 것을 기리는 성전이다. 고대 건축 양식과 현대 디자인 감각을 아우른 미감이 빼어나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를루치가 설계했다.
교회 주변에 목자들이 추위를 피하던 동굴이 있고, 그들이 양을 키우던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이 ‘빵집’이라는 뜻을 지녔을 만큼 보리, 밀 농사가 많았다고 한다.
들판의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의 복음을 전한 것은 낮은 곳으로 임한 그리스도의 생애를 상징한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소 목사는 “그런 뜻과 함께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이 또 있다”며 “목자들이 속한 레갑족(Recabite)이 성결을 지킨 족속이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이 세상 권세에 취해 흥청거릴 때, 레갑족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상의 유지를 지키며 향락을 멀리했고 장막 생활로 세속화를 경계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 회장을 지낸 소 목사의 말은 오늘날 세속화, 정치화로 난국을 겪고 있는 한국 교회에 레갑족의 정신이 필요함을 암시한 것으로 느껴졌다.
목자들의들판교회에서 2㎞쯤 떨어진 곳에 예수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가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가 324년 예수가 탄생한 곳에 교회를 짓게 한 것이 연원이다. 첫 교회는 화재로 불탔으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 재건한 건물은 지금껏 보존돼 왔다.
40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이 거대한 교회의 문은 1.2m로 낮고 좁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야 해서 ‘겸손의 문’이라고 불린다.
교회당 제단 아래쪽 계단을 내려가면 예수가 탄생했다는 지하 동굴을 만날 수 있다. 예수는 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데, 마구간 위로 교회가 들어서니 탄생 장소가 지하 동굴 형태로 남게 되었다. 예수 탄생 지점에 14각형 별이 은으로 장식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선지자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14대를 뜻하는 별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그리스도 탄생의 예비자 역할을 하는 다윗의 탄생지도 베들레헴이다.
이 ‘베들레헴의 별’ 앞에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은 침묵 속에서 자기 차례가 오면 은색 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별을 만지며 기도하거나 입을 맞췄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통로를 따라 연결된 반대편에는 ‘제롬의 동굴’이 있다. 기독교 신학의 주춧돌을 놓은 4대 교부(敎父) 중 한 사람인 제롬(347∼419)은 이곳에 머물며 신·구약성경을 모두 라틴어로 완역했다. 405년 완성돼 가톨릭교회 공인을 받은 이 성경을 ‘불가타(Vulgata)’라고 한다. 상류층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박사는 “제롬은 로마에서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옮겼는데, 반대자들의 핍박을 받아 베들레헴으로 온 이후 히브리어를 배워서 34년에 걸쳐 완역했다”며 “육신의 한계를 늘 생각하며 번역에 몰두했기에 그의 상징물이 모래시계와 해골”이라고 소개했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110㎞ 정도 떨어진 나사렛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교황청은 예수가 속세의 부모인 요셉, 마리아와 함께 살았던 장소로 나사렛의 한 집터를 공인한 바 있다. 그 위로 1914년 성요셉교회가 세워졌고, 집터는 자연스럽게 지하 동굴 형태로 남게 됐다. ‘요셉의 동굴’로 불리는 이곳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의 출입을 금해왔으나, 이번에 한국 취재진에게 이례적으로 개방했다.
성요셉교회의 조지 루이트 신부는 열쇠로 철제문을 열고, 지하 계단과 좁은 통로를 통해 집터로 안내했다. 10평(약 33㎡) 남짓한 집터 공간의 높이는 2∼2.5m에 불과했다. 동굴 보존 상태는 나쁘지 않았으나 한 가족이 살기에는 좁고 누추해 보였다. 천장 한쪽으로 깊숙이 올라간 곳에는 당시 지상으로 연결됐을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었다. 구멍을 통해 빗물을 받아들인 뒤 동굴 바닥의 물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 목사는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낮은 곳에서 사시고,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며 “요즘 교회가 너무 부자이지 않은가, 나 또한 너무 좋은 곳에 살지 않나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성요셉교회의 약 50m 아래쪽엔 ‘수태고지(受胎告知)’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성경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기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장소를 기리는 성전이다.
최근 순례객이 많이 찾는다는 ‘나사렛빌리지’는 고고학의 검증을 통해 예수 시대 마을을 재현한 곳이다. 1996년에 설립된 이곳에서는 나귀 힘을 이용해 올리브기름을 짜는 방앗간, 요셉처럼 목수 일을 하는 공방 등이 있다. 1세기 때의 복장을 한 직원들이 성서 시대의 생활상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예수가 어린 시절에 다녔다는 회당도 볼 수 있다. 이재훈 새에덴교회 목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삶의 흔적을 보고 만지며 가슴이 뜨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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