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줄 알았던 소, 살아났다"…한우 농가 '비밀의 알약' [긱스]
‘소는 감(感)으로 키운다.’ 축산 농가는 노하우로 움직입니다. 건강 상태를 적시에 확인하고, 가임기를 파악해 소 개체 수를 늘려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에 온 신경이 축사로 향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지난달 역대 최고 경매가를 경신한 한우 가격이 8177만원이었습니다.
경험 많은 이들도 생명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생김새의 소 하나하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도, 말이 없는 동물 속내를 실시간으로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손바닥만 한 알약 모양 기계가 바꿔내는 풍경은 그래서 주목받습니다. 올해 북미에서 380만달러(약 51억원) 상당 수출 계약을 따낸 축산테크 스타트업 유라이크코리아는 국내 농가를 대상으로 이름을 먼저 알린 업체입니다. 감에 의존하던 축산 풍경은 정말 바뀌고 있는 걸까요? 한경 긱스(Geeks)가 강원도 횡성의 한우 농가를 직접 찾았습니다.
"24일 05~11시, 수정을 권장합니다"
이철희 씨는 직업군인이었습니다. 감찰장교로 복무하며 전국을 돌았습니다. 2019년 소령으로 전역하며 횡성에서 축산 농가를 운영하던 부모님과 ‘인생 2모작’을 꾸렸습니다. ‘대한민국 명품 지정 1호 횡성축협한우’. 입구의 붉은 간판이 인상적인 그의 축산 농가는 120두가량의 소가 살고 있습니다. 5개 구역으로 나눠진 중형 규모 농장입니다.
이 씨는 1977년생입니다. 농장이 위치한 공근면 창재리에선 젊은 편에 속합니다. 농장에 들어서자, 그는 숫자가 빼곡히 적힌 인쇄물부터 가리켰습니다. “소는 개체번호가 5개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 같은 거죠. 개체별 분만 현황, 수태율 등 확인해야 할 숫자는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해서 붙여놔요.” 소가 언제 태어났는지, 어느 소에게서 태어나 예상되는 등급이 얼만지 따져야 할 데이터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군인 출신이라 데이터 정리하는 데 익숙하다”며 웃었습니다.
이런 그도 처음엔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축산 농가는 대개 소의 수정 주기를 파악하고, 정자를 주입해 인공수정을 시키는 형태로 개체를 불려 운영합니다. 소의 발정은 20일마다 찾아옵니다. 120마리 소의 가임기를 예측하고 수태시키는 일은 손 계산과 추정으로 이뤄지는 일이었습니다. “출산 기미라도 보이면 농가 근처에서 길게는 12시간씩 밤을 새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모바일 앱 ‘라이브케어’입니다. 유라이크코리아가 운영하는 플랫폼입니다. 알람 목록을 누르자, ‘4105.6’ 개체가 ‘분만예정시기 – 25일 저녁’이라는 말과 함께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백신 또는 스트레스로 인한 체온 상승 의심 알람, 잦은 음수나 소화기 장애로 인한 체온하락이 의심된다는 개체별 측정 결과도 도착해 있습니다. ‘5434.0’ 개체는 발정징후를 보인다고 했습니다. ‘권장수정시기는 –24일 05~11시’라는 세밀한 표기도 나타납니다. 개체상태 버튼을 누르자, 빨간색과 흰색, 노란색이 채워진 네모 칸들이 나타납니다. 소는 분만 하루 전 체온이 하락하는 패턴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자별로 온도가 나타나 있어 앱으로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1℃의 마법'…위 속 장치, 발정‧출산 시기 측정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알약 모양으로 생긴 하드웨어(HW) 장치 덕분입니다. 이 씨가 송아지들이 모인 축사로 향했습니다. 수정 작업 전, 15개월 미만 소들이 있는 곳입니다. ‘미경산우’라고 부릅니다. 이날은 미경산우들에게 기기를 주입하는 일정이 있어, 실물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행한 라이브케어 지역 관리담당자가 직접 기기 주입 과정을 보이겠다고 나섰습니다. 막대처럼 생긴 주입 장치 ‘블링 건’은 원래 소에게 비타민을 먹이는 용도로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는 위가 4개인데, 외부로 배출되지 않고 소의 내부 환경을 측정해내는 것이 HW의 핵심 기술 중 하나입니다. 이 씨는 “소가 발정기가 오면 몸체를 흔들고, 체온도 1℃가량 오른다”며 “발정기가 아닐 때는 온도와 움직임 변화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했습니다. 한번 주입된 기기는 소가 도축될 때까지 배터리 성능을 유지합니다. 측정된 데이터는 농가 기둥에 설치된 통신 단말기를 경유해, 본사 서버에서 처리된 후 앱으로 보내집니다.
발정기를 기계로 측정한다는 개념 자체는 농가에 존재했습니다. 외국산 발정 탐지기는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형태라고 합니다. 이 씨는 “귀에 다는 것도 있고, 목걸이형도 있는데 외부만 탐지하다 보니 정확도는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이 씨가 3살부터 5살 사이 암소들이 모인 축사에 섰습니다. 덩치가 큰 거세우들 축사 맞은편, 농장의 중앙입니다. 그는 이내 “소 크기를 한번 봐 달라”며 웃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아빠는 한기범, 엄마는 김연경인 소입니다. 부모가 크면 새끼도 하승진 같은 농구 선수가 나오는 겁니다.” 언뜻 봐도 2m가 훌쩍 넘어 보이는 소였습니다. 암소의 평균 몸길이는 1.8m 정도입니다. 그는 농가 소들을 하나하나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 이름이 ‘우량이’입니다. 생긴 건 볼품 없어도, 이 소가 낳은 첫 새끼가 1300만원에 팔렸어요.” 해당 축사는 대부분이 캡슐을 먹은 암소로, 농장을 구성하는 핵심 축이라고 했습니다.
농가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소의 개체 수 증가입니다. 이 씨는 “축산 농가는 일 년에 소 하나당 한 마리를 낳고 싶어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습니다. 실제론 10마리를 키우면 6~7마리를 임신시켜도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계 측정이 가미되자, 확률이 90%대까지 뛰어올랐습니다. 그는 “2년 전엔 100두였는데, 소를 내다 팔고도 관리 개체 수가 120두로 늘었다”고 했습니다. 최근 국내 대부분의 농가는 사룟값 폭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사료 반이 옥수수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40%는 뛴 거 같아요. 한 마리가 나갈 때까지 400만원은 써야 합니다.” 이 씨는 사룟값 후폭풍을 수정 확률을 올려 메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간 수익을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순수익은 2억원 정도”라며 “개체 절댓값이 늘어 2배 정도 잘 벌리긴 한다”고 밝혔습니다.
죽을 줄 알았던 어미 소, 살아서 나갔다
농가를 걷던 그는 구석 빈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지금은 팔렸는데, 소가 한 마리 있었어요. 새끼를 낳는데 너무 큰 겁니다. 수의사가 와서 제왕절개를 했어요.” 별 탈 없을 줄 알았던 소의 산후 염증을 잡아낸 것은 앱이었습니다. “열이 41℃까지 올랐어요. 밥을 안 먹길래 어디 좀 아픈 정도로 생각했어요. 체온을 보면서 항생제랑 해열제를 계속 넣어줬어요. 묻어줘야 되나 했던 친구였는데, 얼마 전에 살아서 나갔습니다.” 수익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어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소의 건강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점만은 높이 산다고 전했습니다.
축산 농가 디지털 전환이 마주한 벽은 농민들의 ‘관성’으로 파악됩니다. 표면적으론 비용 문제가 먼저 등장합니다. 기존에 써오던 외국산 발정탐지기는 수백만원 상당으로 농가 입장에선 고가입니다. 라이브케어 솔루션은 이보다 저렴하지만, 역시 백만원 단위입니다. 이 씨는 “사실 추후 벌어들일 수익을 생각하면, 초기 도입 비용이 비싸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가 주변에 기기를 권하며 접한 문제점은 “디지털 기기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은 목돈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앱을 다시 꺼냈습니다. “내일 새끼를 낳을 것”이라는 소의 온도가 실제로 39.8℃에서 38.4℃로 1℃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호르몬 변화로 분만이 임박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직접 출산 예정 암소를 확인했습니다. 육안상으론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소의 임신 기간은 285일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수를 맞춰 태어나진 않습니다. 마음을 놓을 수 없던 이유입니다. 이젠 온도가 떨어져 알람이 오면, 그는 다음날 일정만 비운다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비상 대기죠. 요샌 일정을 미리 확인해놓고 친구도 만나고 합니다. 이런게 '변화'인가봅니다.”
김희진 대표 "내년도 미국 시장 공략 본격화"
유라이크코리아는 김희진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이화여대 컴퓨터공학 학‧석‧박사 출신으로 대학원 과정 중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세부 전공은 소프트웨어 공학으로, 일종의 프로그램 성능 평가를 공부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은 외부 과제 업무를 많이 수행하는 전공입니다. 현대차‧삼성전자 등은 물론, 정부 과제도 많이 접했다고 합니다. 유라이크코리아의 시작도 여기서부터입니다. 김 대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가축 질병 예방 시스템 관련 과제 계획서를 쓰다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내장형 장치 개발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영남대 축산과를 2기로 졸업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축산업계 다양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2012년 창업해서, 프로토타입 만드는 데 3년 걸렸어요. HW를 만들고 나니 관제 앱도 필요하더라고요.”
통신망 확보와 딥러닝 방식 적용에 다시 2년이 소요됐습니다. 소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사물인터넷(IoT) 통신 서비스와 인공지능(AI)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배터리 수명도 관건이었습니다. 미경산우가 성우가 되는 시기부터 3년 동안 기기가 몸체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2월 비로소 정부의 장치 무해성 테스트와 인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엔 KDB산업은행으로부터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라이브케어’ 솔루션은 전국 4만 두가량의 소를 관리합니다. 김 대표는 “생체 데이터 기반 AI 모델링은 정확도를 90%까지 끌어올리긴 쉽지만, 그 이상이 어려운 영역”이라며 “라이브케어는 돌발 유형까지 모두 학습해 제대로 AI를 쓰는 곳”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해당 솔루션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대상에서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내년엔 국내만큼 해외 사업 확장에 주력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의 기회가 많습니다. 미국은 기업형 축산 농가가 많고, 호르몬제로 소의 발정을 동기화를 시키는 방식을 취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년부터 법적 제재가 예정되어 있어 대체할 만한 관리 솔루션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김 대표는 “국내가 100두 단위라면, 해외엔 한 농가당 계약이 5000두씩 이루어지는 시장”이라며 “미국 시장 공략이 주요 목표”라고 전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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