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개의 우주가 사라졌다[오늘을 생각한다]

2022. 12. 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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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고 있다. 심신이 지쳐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좋은 기회로 3박4일 집단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걷는 행위에 집중하는 명상, 죽음의 체험을 하는 명상, 숫자를 세며 집중하는 명상 등 다양한 방식을 체험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참가자 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자신을 탐색하는 명상으로 이뤄졌다.

20명 남짓한 남녀노소가 생전 처음 본 타인에게 자신의 삶과 트라우마를 꺼내놓았다. 애초에 ‘나’를 돌아보기 위해 마련한 시간이었는데, ‘타인’에 대한 감흥이 훨씬 컸다. 사람들의 갑옷이 아닌 속살을 보고 들으며 가장 많이 느꼈던 건 한명 한명의 삶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24시간, 365일 매해 각자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며 상처를 받는 한편, 극복과 성장의 노하우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사람은 자신을 넘어 다른 인간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세상을 지탱하고, 한순간에 변혁하는 것도 사람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말은 많이 하지만, 부끄럽게도 사람이 왜 존귀한지 이론 이상으로 알지는 못했다. 타인을 깊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해보니 진정으로 한명 한명이 거대한 우주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죽음은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종종 물질 너머의 인간을 간과한다. 물건을 살 때 포스기 너머의 사람을 계산해주는 점원으로만 보지, 귀한 우주로 여기지 않는다. 물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관계에서 사람은 각자에게 수단으로 전락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최근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인적 자원 관리 이상으로 한 직원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 정부는 유권자 이상의 한 생명으로 사람을 구제하고 보호하지 못한다. 시민들은 각자의 밥벌이를 좇는 데 너무 바빠 생명을 하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충분히 추궁하지 못한다.

그 결과, 생때같은 158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의 우주가 사라져 텅 비어 버렸다. 이로 인한 우리의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2014년 4월 16일 이미 더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때만큼 사회적 공분이 크지는 않은 분위기다. 처참한 일들이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이 멍처럼 세상에 번지는 듯하다.

인간의 존엄이 교과서 속에만 박제된 언어로 남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 간의 단절을 먼저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2022년 10월 29일은 우리에게 공감과 공분 그리고 연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사람이 진정으로 귀한 줄 모르고 보낸 하루 이틀이 오늘날의 참사를 낳았다. 끔찍한 이번 희생을 변곡점으로 삼지 못하면 앞으로 더 큰 사회재난이 발생할 것이다. 조금 먼 이웃의 상실에 함께 아파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내 상실에 함께 울어줄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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