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마을 33㎡ 집터, 예수는 가난한 석수였다
한국·이스라엘 수교 60년 맞아
‘역사적 인물’ 예수 유적지 찾아
예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자주, 가장 많이, 가장 열광적으로 불리는 이름이며, 가장 많은 제자와 신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다.
한국-이스라엘 수교 60돌을 맞아 예수의 삶의 흔적이 있는 유적지를 찾았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현지시각)까지 닷새간 진행한 ‘성탄 기획 이스라엘 특별 성지순례’에는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의 담임 소강석 목사(전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박요셉·이재훈 목사, 강인철 집사, 이스라엘 유대학연구소 이강근 소장(전 이스라엘 한인회장), 이영란 이스라엘 전문 가이드가 동행했다.
첫 순례지는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인근 베들레헴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베들레헴 중심가엔 예수가 태어난 곳에 세웠다는 ‘예수 탄생 기념 성당’이 있다. ‘빵집’이란 뜻의 베들레헴은 해발 700여m에 자리 잡은, 석회암 비탈에 벌집처럼 많은 동굴이 생겨나 있는 성읍으로, 구약의 주요 인물 다윗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이동 중 이곳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마구간 위로 교회가 들어서니 탄생 장소는 지하 동굴의 형태가 됐고, 돌로 된 구유가 동굴 한켠에 놓여 있다.
그런데 베들레헴은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으로부터 현재 도로망으로 봐도 무려 152㎞(구글 지도 기준)나 떨어져 있다. 당시 도로망으로는 200㎞ 넘는 거리였을 테다. 하루 16㎞ 정도 여행할 수 있는 그 시절엔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일주일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만삭의 몸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 탄생지가 남부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 인근인 갈릴리의 베들레헴이었을 것이란 고고학자들의 설도 제기된다.
다음 순례지는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예수의 고향 나사렛이었다. 인구 7만명이 사는 나사렛 역시 베들레헴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구역이다. 안내에 나선 이강근 소장은 “예수는 당대에 이스라엘에서는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주 예수’는 ‘나사렛의 예수’로 불렀고,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히브리어로 ‘나사렛 사람’이란 뜻의 ‘노츠리’(Notzri)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나사렛은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375m의 높은 분지에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제자 나다나엘(바르톨로메오)조차 처음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한 것을 보면, 당시 나사렛이란 마을이 동경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가 살던 곳엔 1914년 성요셉 성당을 세웠고, 집터는 교회 지하에 동굴 형태로 보존돼 있다. 성요셉 성당은 지난달 29일 한국 취재진에게 ‘요셉의 동굴’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 동굴은 30년 전부터 현장 보존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봉쇄해왔다. 조그만 계단이 놓인 통로를 10여m 내려가자 33㎡ 남짓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을 가톨릭 로마교황청이 예수의 집으로 공인했다고 한다. 마태복음(13장 55~56절)에 따르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고 돼 있어, 예수의 형제와 누이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요셉과 예수는 이 옹색한 집에 살면서 많은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힘든 노동을 감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례에 동행한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이 이렇게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요즘 교회는 너무 부자로 사는 것 같아 부끄럽다”며 “낮아지고 비우는 삶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성서에서 예수의 청년 시절은 공백기다. 예수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30살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3년의 공생애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재훈 목사는 누가복음(2장 52절) 구절에 언급된 12살 무렵의 예수가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대목에서 소년·청년기 예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의 공생애의 중심 사역지는 나사렛에서 30여㎞ 떨어진 갈릴리호수다. 이스라엘은 갈릴리로부터 370㎞ 길이의 관개수로를 통해 네게브사막 등을 옥토로 바꾸고 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물 전체 소비량의 70%를 담당하는 명실공히 생명의 젖줄이다. 황량한 불모지가 대부분인 이스라엘에 만약 갈릴리호수가 없다면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허언이 되고 만다. 갈릴리는 고대로부터 남북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여서 군인, 상인, 여행자 등이 왕래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갈릴리 호숫가 도시 티베리아스는 해발 마이너스 200m로 겨울에도 따듯해 지금도 겨울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일대에 있는, 예수가 산상수훈을 한 곳에 세웠다는 ‘팔복 성당’,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군중을 먹였다는 기적의 장소인 ‘오병이어 성당’,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곳이라는 ‘성베드로 수위권 성당’ 등은 전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기적의 장소들엔 후대에 교회 건축물이 들어서 고대의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갈릴리 호숫가엔 예수의 실제 삶을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고대 도시들이 발굴돼 있다.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치고, 여러 기적을 행하고, 수제자 베드로의 생가가 있었기에 ‘예수의 도시’, ‘예수의 고향’으로까지 알려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서면 청년 예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또 베드로, 안드레(안드레아), 빌립(필립보) 등 3명의 주요 제자 고향인 벳새다와 고라신,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주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막달라 등이 2000~3000년 전에도 갈릴리 호숫가 마을들이 번성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소강석 목사는 “갈릴리 호숫가 고대 도시들은 당시에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곳이어서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예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재현해놓은 나사렛 빌리지에서도 예수가 나무를 다듬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지만, 고대 도시들은 온통 돌로 지었을 뿐 나무집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 건축물들도 이스라엘에서 난 ‘라임’이란 돌로 지은 것들 일색이다. 이강근 소장은 “요셉과 예수님의 직업으로 알려진 복음서의 ‘텍토노스’(tektonos)의 정확한 뜻은 목수보다는 일반적인 건설노동자로 볼 수 있다”며 “예수님은 나사렛 인근에 건설된 치포리나 20살 무렵 갈릴리 왕국의 수도로 새로 건설된 로마식 도시인 티베리아스 건설 현장을 오간 석수로 보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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