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경제 위기, 이제 터널 입구일 뿐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2022. 12. 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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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가 다 경제 위기는 아니야
‘경제 무능’ 프레임에 민심 이반이 진짜 위기
대통령의 겨울은 춥고도 길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한 상인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생중계를 TV를 통해 시청하고 있다./뉴스1

한국 경제에 10년 위기설이 제기되곤 했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험하면서 10년 주기설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자 메가톤급 위기가 닥친 것으로 보고 시중에 금과 달러 사모으기가 유행했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가 경험한 초유의 사태였다. 자영업자들에게는 국가 부도급 재앙이었지만 경제에 미친 충격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양호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엄청나게 돈을 풀어 추락을 막았다. 되레 집값, 주가, 가상 화폐 같은 자산 시장이 펄펄 끓었다. 수해(水害)가 휩쓸고 간 뒤 전염병이 창궐하듯 돈의 힘으로 떠받친 청구서가 이제서야 날아들고 있다.

그럼 풀린 돈을 거둬들이며 경기가 수축하는 지금이 진짜 경제 위기인가. IMF 외환 위기 같은 고강도 경제 위기가 닥쳐올 건가. 위험 요인은 도처에 널려 있고 언제 어떤 상황으로 악화할지 모른다. 그래서 위기설도 넘쳐난다. 하지만 위기는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경제 곳곳이 살얼음판인 건 맞지만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를 구분해서 대응할 필요는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위기는 위기도 아니라는 말도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실력은 없어도 운이 좋았다. 세계 경제 호황에, 역대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꾸린 덕에 물려받은 나라 곳간이 두둑했다. 집권 초반,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등 경제에 부담을 안기는 정책을 무리하게 시행했다. 세계 각국이 투자 촉진책을 쓰고 일자리를 늘려 사상 최저 실업률을 구가할 때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갔다. 정부 실책으로 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질 지경에 이르자 돈 풀어 성장률을 2%로 겨우 끌어올렸다. 그 모든 실책을 계속 남 탓만 했었는데 진짜 남 탓이 생겼다. 코로나 쇼크는 문 정부에는 온갖 실책을 덮어준 축복이었다. 엄청나게 풀린 돈 때문에 집값도, 주가도 올랐다. 노골적인 매표(買票) 국정에도 재집권을 못한 건 알리바이가 너무나도 명백한 부동산 실정 때문이다.

경기 침체 국면에 출발한 윤석열 정부는 그런 운은 없다. 경제 지표는 무엇 하나 좋은 수치를 찾기가 힘들다. 올해 수출이 사상 최고치로 세계 6위 수출 국가가 됐다지만 사상 최대 무역 수지 적자로 생색을 낼 수도 없다. IMF는 세계 경제 전망치를 계속 낮춘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풀린 돈을 빨아들이니 부동산도, 주가도 급락해 소비 진작은 기대 못 한다. 국제 경기 침체로 수출이 꺾이니 생산과 투자도 줄고 있다. 기업들이 내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채용도 줄이겠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니 빚 많은 가구의 고통이 가중된다. 물가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르고 경기가 빠르게 식으니 민생은 퍽퍽해질 수밖에 없다.

민심의 핵심은 경제다. 사실 경제는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사이클을 그리기 때문에 침체가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번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는 있다. ‘고난의 2년’을 보내고 2024년 이후에나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24년 4월 총선 무렵 경제 상황이 결코 윤 대통령 편이 아닐 수 있다. 푸틴 탓도 있고, 바이든과 시진핑이 싸우는 탓도 있고, 전임 정부의 실정 탓도 있고, 그 누구 탓도 아닌 경기 사이클 요인도 있지만 대통령이 ‘글로벌 복합 위기’ 운운하며 참아달라는 호소는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도전적인 상황이 한꺼번에 여럿 닥친 건 맞지만 그렇다고 IMF 외환 위기나 코로나 팬데믹처럼 모두의 눈에 동시에 보이는 쇼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느끼는 경기는 높은 물가, 일자리 부족 같은 각자의 형편에 다르게 와닿는 하루하루 삶의 고통이다.

이런 침체가 깊어지면 민심은 급격히 악화한다. 169석의 거대 야당은 올해와 내년의 경기 침체를 경제 위기로 키우기 위해 전력할 것이다. 경제 위기가 야당에는 곧 집권 여당을 무력화하고 정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지형이 진짜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 지금도 법안 심사, 예산 심사 같은 국회 본연의 업무를 민노총의 막무가내 파업 수준으로 내팽개치거나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 되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야당을 제대로 못 다루는 것도 궁극에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책임이니 ‘경제 무능’ 프레임을 작동해 정부 공격의 수위를 드높일 것이다. ‘경제 무능’은 민심을 잃고 정권의 실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당장 경기 사이클을 반등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도 정부는 경제 회복을 촉진하고 민생을 돕는 정책을 꾸준히 실행하면서 국민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지와 위기 대응력이 있다는 걸 입증해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국정 과제 법안을 왕창 넘기고는 거대 야당이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야당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여론을 의식해 민주당도 마냥 뭉갤 수 없는 법안과 예산부터 통과시켜 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응처럼, 윤석열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기대를 심어주어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간 위험한 불씨가 언제 어디서 대형 경제 위기로 옮겨붙을지 모른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될 국가적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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