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7]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1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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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1899년, 캔버스에 유채, 150×200㎝, 1945년 화재로 소실.

한파가 오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는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얼어붙은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나설 때 얼마나 춥고 우울할까. 실제로 슈베르트는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그림 속 슈베르트는 따사로운 촛불의 열기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그의 연주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아름다운 여인들 가운데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클림트의 수많은 작품에서 황금색은 눈부시게 호화롭고 지나치게 유혹적인데 반해, 여기서의 황금색은 그저 부드럽고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이는 빈에 거주하던 그리스계 사업가이자 예술 후원자 니콜라우스 덤바가 저택의 뮤직룸을 위해 주문한 것이다. 덤바가 가장 사랑했던 작곡가가 슈베르트였다. 그는 슈베르트의 친필 악보 198점을 수집해 빈 도서관에 기증했고, 빈 시립공원에 슈베르트상(像)을 세웠다. 빈 남성 합창단에 거금을 기부하면서 절대 건물에는 돈을 쓰지 말 것과 종종 그를 추모하며 노래를 불러 줄 것을 요청했는데, 오늘날까지도 합창단은 그를 위해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곡을 부른다.

그림 속 여인들은 슈베르트의 시대가 아닌 덤바와 클림트 시대의 드레스를 입었다. 화면 왼쪽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이는 클림트의 모델이자 연인이다. 이들의 시대에 이미 세상에 없던 슈베르트가 이처럼 또렷하게 그려진 건 아마도 모두가 매료된 그의 음악을 상징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그림은 2차 대전 중 화재로 소실돼 사라지고 없다. 덤바는 전쟁이 건물을 태워 없앨지라도, 노래를 태울 수는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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