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우리의 비전, 우리다운 비전

국제신문 2022. 12. 6. 0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괜찮지 않은 변화란 없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책자의 제목이다. ‘누구나 괜찮은 일상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서 발간한 소책자다. 한우리정보문화센터는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 구현’이라는 미션을 가진, 서울 서초구의 구립 사회복지 기관이다. 책자에는 기관의 비전 메이킹 과정이 담겼다. 구성원 모두가 참여한 나흘간의 비전 워크숍, 비전TFT의 20여 차례 회의, 전문가 중간 점검과 자문회의, 그리고 비전 선포식까지, 장장 5개월에 걸친 시간이었다. 그 출발점이었던 워크숍과 자문회의를 진행했던 내게 감사의 뜻으로 보내준 책자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조직들이 비전 수립에 열심이다. 상수가 되어버린 변화에 맞춤하는 혁신 나침반의 업데이트를 위해서다. 비전과 미션은 조직의 방향이다. 조직의 철학이다. 나아가 조직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하지만 비전과 미션에 관심을 갖는 건 만들 때 그때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힘들게 만든 비전과 미션이 제 역할을 못 한다. 직원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할 비전과 미션이, 아무도 찾지 않는 홈페이지 속에 박제되어 방치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의 비전’이 아니라서다. ‘그들의 비전’이라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비전은 몇몇 리더들이 만든다. 최고 리더 혼자서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치 개인 좌우명을 만들듯 자기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개념과 단어들을 조합하여 만든다. 그러고는 구성원들에게 ‘하달’한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라며.

자유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 자유는 단순히 신체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나로부터(自) 말미암는다(由)’는 개념이다. 내게 의미 있어야 의미 있는 거고, 내가 재미있어야 재미있는 거다. 판단의 주체는 오롯이 나라는 생각, 그게 자유다. 그런 그들에게, 리더 몇몇이 만들어 공지한 비전은 ‘우리의 비전’이 아니다. 그저 그들만의 비전일 뿐이다. 내 생각이 한 스푼도 들어가지 않아서다.

관건은 참여다. 내가 직접 참여할 때, ‘저기 멀리’ 있던 ‘그들의 비전’이 ‘지금 여기’로 와서 ‘우리의 비전’이 된다. 모든 구성원을 비전 수립 작업에 참여시켜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이유? ‘우리다운 비전’이 아니어서다. 수많은 조직의 비전과 미션들을 보라.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상의 언어가 아니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추상의 언어들이다. 예컨대 ‘인간 존중’, ‘미래 창조‘, ‘세계 제일’ 같은 식이다. 세상의 좋은 표현들을 죄다 끌어모았다. ‘좋은 말 대잔치’다. 누가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우리의 비전에 다른 기업이나 기관을 갖다 붙여도 어색함이 1도 없는 이유다.

추상과 구상, 관념과 실재, 이론과 현실. 세상의 주도권은 늘 후자에 있다. 비전과 미션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일상의 표현이어야 한다. 손에 잡히는 현실의 언어여야 한다. 추상과 관념과 이론으로 가득한 비전은 헛헛하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한 느낌적인 느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도 말했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더 생생하고 진실해진다고.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움직임은 무의미해진다고. 공허한 비전의 멱살을 붙잡고 이 땅으로 끌고 내려와야 한다. 아무나 얘기할 수 없는, 우리만 얘기할 수 있는 ‘우리다운 비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다. 변화가 문제라면 해답은 혁신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조직의 혁신이 ‘우리의 비전’과 ‘우리다운 비전’으로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 기억하자. 혁신은 구체적인 일상에서부터다. 지금 여기, 나로부터다!


참,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덧붙인다. “새로운 변화에 함께 성장하는 ‘스마트’한 우리, 다정한 마음으로 파트너 되는 ‘스위트’한 우리, 모두가 안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스마일’한 우리.” 한우리정보문화센터의 새로운 비전이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사장을 위한 노자’ 저자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