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세대교체, 우리의 몫이다

국제신문 2022. 1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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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카충 얼죽아 만반잘부 Gr8….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낯설고 뜻도 짐작이 가지 않는 이 말들은 모두 단어나 문장, 외래어를 줄인 신조어다. 요즘에는 방송이나 음악 등 각종 매체에서도 거리낌 없이 유행처럼 사용된다. MZ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세대들의 언어문화가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니 사회 전반에 걸쳐 언어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시대에도 세대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을 배웠던 분이라면 분명 ‘캄오실데석페 트쥐백’으로 고생대와 중생대 각 기(period)를 외우셨을 것이다. 현재는 신생대 제4기에 해당하는데, 제4기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약 1만 2000년 전을 기준으로 다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와 홀로세(holocene)로 나뉜다. 이때 ‘-세’를 구분하는 기준은 생물층서, 즉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종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는 전부를 뜻하는 그리스어 ‘holos’와 새로움 또는 시대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로, 풀이하면 발견되는 모든 화석이 현재에 살고 있는 생물종(현생 종)으로 구성된 시기를 의미한다.

뜻만 놓고 본다면 홀로세의 세대교체는 언제쯤 이루어질지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인류는 현생 종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인류가 멸종하는 시점이 홀로세의 끝이 되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다. 그런데 20여 년 전 야심 차게 홀로세의 끝을 선언한 과학자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파울 크뤼천 교수다.

2000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에서 크뤼천 교수는 우리가 이미 ‘인류세(anthropocene)’에 살고 있음을 선언했다.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cene’의 합성어인 인류세는 지층이나 화석으로 지질시대를 구분하던 기존 층서학적 관점과는 달리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미친 영향을 함축하고 있었다. 인류에 의한 새로운 시대, 인류세의 시작을 알린 크뤼천 교수의 주장은 곧바로 과학계와 사회 전반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대기오염 물질의 성층권 오존 분해 메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 시스템의 변화 증거는 지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은 이미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었다. 매년 경신되는 기록적인 더운 날씨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다 못해 이제는 갯벌이 들어서거나 모기떼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북태평양의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는 전 세계에서 버려진 부유성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인 거대한 쓰레기 섬이 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1997년 우연히 발견된 후 그 규모가 계속 커져 현재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16배 정도가 된다. 이 외에도 방사능 낙진, 생태계 파괴, 심지어 닭의 뼈까지 인류가 지구에 남긴 부끄러운 흔적은 민망하리만큼 많다.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은 현재까지도 분분하다. 물론 그 결정은 오롯이 과학자들의 몫이다. 지금 사는 시대를 홀로세라고 부를지 아니면 인류세라고 부를지,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인류세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네덜란드 비영리환경단체 ‘오션클린업’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수거한 6000여 점의 쓰레기 중 약 10%가 한반도(남한·북한 합산)에서 배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본(34%)과 중국(3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양이라고 한다. 부끄럽고 씁쓸한 소식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르게 지구와 상호작용하라는 것. 그것이 인류세의 진정한 의미이자 인류세로의 바람직한 세대교체일 것이다. 인류세를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홀로세에 남을 것인가. 이건 분명 우리의 몫이다.

정도준 부산일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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