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34] 우리는 박지성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12.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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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억력이 좋아져 뭐든 잘 외워지는 분이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라고 하면 연령대와 상관없이 모두 웃기만 한다. 이어서 “요즘 의욕이 넘치는 분이 있으세요?”라 질문하면 손 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만큼 마음이 지쳐 있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이 지치다 보니 무기력감과 집중력 저하로 인한 건망증을 경험하는 일이 기본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약해진 것인가, 모두 유리 멘털이 된 것인가.

마음이 지친 스스로를 지나치게 한심하다고 나무라는 분에게 ‘우리는 박지성이다’란 말이 툭 나온 적이 있다. 월드컵 시즌을 맞아 ‘박지성’이란 잊을 수 없는 메타포를 사용한 은유적 소통을 한 셈인데, 뭔 말인가 궁금한 표정이다. “선수 시절, 월드컵 경기에서 연장전을 치르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다리에서 피로와 통증을 느낄 때 박지성 선수는 약해진 것일까요? 혹시 반대로 그 피로와 통증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는 역설적 증거는 아닐까요?”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강한 멘털도 마음은 지친다. 유리 멘털이어서가 아니다.

마음 관리에 핵심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회복탄력성’이다. 아무리 스트레스 주먹을 맞아도 끄떡없는 마음을 가지면 최상이겠지만 그런 마음은 없다. 축구 경기를 마치면 탈진하는 것과 같다. 탈진한 축구 선수가 스스로를 체력이 한심하다고 심하게 탓하면 마음과 몸의 회복이 오히려 더뎌지고 다음 경기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기 어렵다. 경기에 대한 냉정한 리뷰는 필요하겠지만 최선을 다한 스스로를 대견하다 안아 주는 것이 탄탄한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자기비판과 자기 위로(self-compassion)의 균형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연습을 주로 하다 보니 대체로 자기비판엔 능숙하다. 그러나 ‘자기 위로’에는 어색하다. 운동 경기에서 심리 상태가 경기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식이다. 과도한 자기비판에 좌절한 상황에서 좋은 퍼포먼스가 나오기 어렵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올 한 해를 되돌아볼 때 허무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공허한 내용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떨어져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기 쉽다. 계획대로 인생을 정확하게 꾸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돌발 변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꼭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삶은 아니다.

‘우리는 박지성이다’라고 지금은 격하게 나를 위로하고 격려할 때이다. 그래야 허무한 감성이 대견함이란 감성 기억으로 바뀌고 그 기억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소중한 오늘에 몰입하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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