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한동훈 장관, 정진웅 검사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
이제는 윤 정권과 운명 함께 할 정치인
후과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 검찰 풍토 벗어나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법조인들의 언어 사전에 ‘뒷감당’이라는 어휘는 없어 보인다. 오심이 곧잘 지적되고, 잘못된 판결이 훗날 밝혀지곤 하지만 검사도, 재판관도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의 잘못에서 빚어진 불행은 온전히 피해자들이 숙명적으로 감수해야 할 몫이다.
법조인들은 현실적으로 법치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일들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의 삶마저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참 냉혹한 불평등 구조다. 더구나 유신체제나 군부 독재정권의 체제유지에 공안 검찰과 법원이 도구화되면서 정치범이나 양심수에게 가해진 사법피해는 가혹하기조차 했다.
수많은 장기수들을 양산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법원의 재심을 거쳐 그들의 무죄가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선 때늦은 시시비비일 뿐이다. 사형을 언도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법살인에 대해 사과한 재판관들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이태원 참사 유족에 대한 사과를 외면해 비난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어떤 이들은 후과에 대해 ‘사과해본 적이 없는’ 검찰 풍토가 몸에 밴 검사 출신 대통령의 행태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법조인들은 왜 사과에 인색할까? 형사 피고들에게 형량경감을 위해 반성문을 곧잘 종용하면서도 왜 자신들은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을까? 기자 개인의 추측이긴 하지만, 자신의 결정이 지닌 ‘무오류성’의 권위에 아무도 반발해서는 안 된다는 오만한 독선…이를테면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오류성은 진리의 개념에 속한다. 따라서 자신의 법리가 마치 진리인 양, 절대적으로 정당하다는 법조인들의 아집이 결국 사법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근원적 동기라는 관점에서, 독일의 법 철학자 울프리드 노이만의 언급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노이만은 "법에서의 진리는 결코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판결에 대해 비판을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이만의 정리에 따르면, 법에 있어서 정당성은 종교의 진리처럼 외생적으로 주어져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판결에 대해 ‘더 나은’ 결론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도구적’ 개념이 돼야 한다는 관점이다.
'채널A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정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지난달 30일 정진웅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차장검사)의 무죄가 대법에서 확정된 것에 대해 "'없는 죄를 덮어씌우려 한' 권력의 폭력에 대해 법과 정의에 따라 정확하게 판단해 준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또 이 연구위원은 "이 기소에 관여한 법무부, 검찰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정진웅 전 부장검사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시간"이라는 입장과 함께 정 연구위원을 수사하거나 기소한 검사들이 한 장관에 의해 승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한동훈 법무장관의 사과를 촉구한 것이다. 정진웅 검사가 겪은 사법피해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던 것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법리 안에서 평결의 정당성에 경애심을 함께 해야 할 동료 검사의 사과요구에 한 장관은 답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한 장관은 이에 답하지 않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영역에서 윤석열 정권과 명운을 함께 해야 하는 ‘정치 동일체’의 영역으로 신분 이동을 한 변화가 사과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 같은 패거리 권력 도그마에 갇혀있다면, 기자가 오래전에 겪은 일화 하나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에게 들려주고 싶다.
오래 전 기자가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하 YS)이 당선된 직후였을 것이다. 민정당 소속 국회의원까지 지냈지만 당시 이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총재가 이끈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직을 맡고 있었다.
YS가 집권 후 평소의 무대뽀 정신으로 자질 부족 수하들을 요직에 앉히며 흥분하듯 정권을 즐길 때, 이를 곱지 않게 본 이 부총재는 지금도 머릿속에 또렷이 남은 언급을 했다.
"장수가 말을 타고 부대를 호령해 전쟁에서 이겼으면, 이제 말을 내려 전장의 상처를 보살펴야 하는데, YS는 아직도 말을 타고 앉아 있다."
선거가 끝나고 승자가 가려져 권력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복수혈전을 보듯 전쟁터처럼 살벌한 작금의 정치현실 속에서 가슴에 거듭 와 닿는 명언이다. 한동훈 장관 또한 이제 말에서 내려 정진웅 검사의 지난 상처에 공감하고 사과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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