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세속의 기도 ‘안개’
서로 보살피며 불러 더 감동
부조리한 세상 진실 밝히듯
자기 길 향하는 길잡이 절실
청룡영화제가 끝났다. 축제는 시작이 아니라 끝을 의미한다. 그간의 노고와 슬픔을 다 소산시키는 것이 축제다. 소산이라고 했지만, 인간사, 완전한 연소는 없다. 잔여가 남는다. 2022 청룡영화제의 잔여는 ‘안개’였다. 정훈희님이 불렀다.
보사노바 리듬이 더 마음을 잡고 흔든다. 두 가수의 엇박자 때문에 더 사랑에 가까워진다. 사랑은 엇박자에, 비대칭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만큼 받을 수 있는 것도, 받은 만큼 되돌려 주게 되는 마음도 아니다. 그래서 온 존재를 다 바쳐야 덜 손해가 되는 이상한 게임이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원망, 우울, 억울함, 실망, 황홀, 복수심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다. 혼종의 감정이다. 기쁨과 황홀만 있다면 좋겠지만, 원망이나 우울이 없다면 기쁨과 황홀도 없다. 기쁨은 우울과 콘트라스트로 생기는 거고, 황홀도 억울함의 보색대비로 발생하는 것이다. 실망과 억울함은 행복과 기대감에 따라붙는 그림자다.
청룡영화제에선 송창식님의 자리를 젊은 가수 라포엠이 대신했다. 라포엠은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 ‘열심히’의 일관성은 젊음 때문이다. 나이 들면 알게 된다, 존재의 한 부분은 결코 늙지 못한다는 것, 그 늙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를 지배한다는 것, 그 불균형이 고통이 되고 쾌락이 된다는 것. 정훈희·송창식님의 ‘안개’에는 그 불균형의 지극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노래는 결코 소비되지 못한다. 하릴없이 세속의 기도문이 된다.
영화제 일주일 전, ‘빈 살만’도 한국에 있었다. 그의 이슈는 ‘네옴시티’였다. 네옴시티엔 900만명이 입성할 수 있다는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 타진했다. 과학기술이 더 빨리 발전할 거라는 기대 속에서 네옴시티의 미래를 자신의 미래로 치환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그 900만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진짜 관심은 네옴시티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지금 현재의 이득일 것이다. 그 이득은 n차로 파생되기 때문이다. 관련 주식이 오르고, 계약 체결한 대기업의 주식에 투자자가 몰리고, 수주 경쟁이 붙고, 이 소식을 재빨리 전하고 진단하면서 여러 담론을 쏟아내는 매체와 유튜버들이 이득을 내고, 결국 그것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소액 투자자가 된다. 아직 기반시설조차 없는데 벌써 그 자리에 K팝이 들어갈 거라며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 환상이 또 상품으로 팔린다. 상품만이 아니라 상품의 가능성도 경제적·정치적 이윤을 만든다. 자본가도, 정치인도 모두 빈 살만에게 몰려간 이유다. 그들은 10·29 참사의 고통을 뒤로하고 그 왕자에게로 달려갔다.
네옴시티는 빈 살만의 환유 같다. 그에 대한 과잉 경호가 그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벽으로 둘러싸인 네옴시티는 가진 자의 집착과 공포의 상징이다. 네옴시티가 완성된다면 재력·권력·폭력으로 두려움도 과잉된 ‘빈 살만들’이 입성하게 될 것이다. 성곽과 감시 네트워크로 자신들만의 천국을 구축할 것이다. 완성되지 않더라도 유사 네옴시티 계획, 그 아류와 속편은 계속 발표될 것이다. 계획 자체가 돈과 권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네옴시티는 초양극화의 결정판이다. 네옴시티는 ‘꿈의 도시’이겠으나, 그 꿈은 다른 이들의 꿈을 빼앗는다.
네옴시티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아니다. 현재의 부와 권력, 폭력에 대한 편집증상의 집약이다. 매체와 대중이 네옴시티 이슈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그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배제되려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몰라야 한다.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영원한 배제의 조건이 된다. 네옴시티는 다른 곳을 무력한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네옴시티가 이 세계를 네옴시티와 네옴시티가 아닌 곳으로, 인류를 네옴시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옴시티가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어놓고, 그 환상을 품은 사람들을 동시에 소외시킬 때, 권력자·재력가들이 빈 살만의 부름에 달려가 그들만의 희망을 약속하고 연회를 화려하게 마쳤을 때, 그 뒤로 10·29 참사의 흔적이 낭자할 때, ‘안개’가 들렸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환상도, 천국도 보여주지 않았다. 기괴하고 부조리한 이 세계에 잠깐 스치는 진실의 표정 같았다. 슬픔과 고통을 떠나보내는 세속의 기도문처럼 들렸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우리에겐 이 기도문이 필요할 것이다. 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개 속에서도 묵묵히 걸어가기 위해서.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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