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축구는 어떻게 세계의 스포츠가 됐을까
공 하나로 소속감 가지고 투쟁심 자극

“미치광이 같은 영국인 무리가 한데 모여 황소 오줌보 같이 생긴 무언가를 이리저리 차고 논다. 이 물건이 나무 막대기로 지어놓은 사각의 틀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매우 만족해하고 반대로 매우 상심하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브라질의 한 언론인의 말이다.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의 ‘축구의 세계사’(실천문학사 펴냄)에 나온다. 오늘날 축구는 브라질의 국가 스포츠이고,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축구가 세계를 호령하지만, 150년 전만 해도 축구는 전적으로 영국 야만인들의 지역 스포츠였음을 알 수 있다.
축구 비슷한 공차기 게임이 처음 역사 기록에 등장한 것은 중국 당나라 때 축국(蹴?)이다. 그렇지만 축구의 뿌리는 원시 시대 부족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발로 차면서 모욕하는 행위를 기원으로 한다. 한마디로, 축구는 전쟁의 상징적 재현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십 명, 수백 명이 어울려서 온몸으로 공을 다투는 바람에 축구를 하다가 죽고 다치는 게 일상이었다.
축구가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세기 영국에서부터이다. 귀족 엘리트들의 여흥에 불과했던 축구가 모두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데에는 근대 산업화가 큰 역할을 했다.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 하층에 자리 잡은 노동자 계급은 틈날 때마다 함께 모여서 축구를 하고 동료를 응원하면서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되찾아 갔다. 축구가 산업화의 확산 경로를 따라 1920∼1930년대에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로, 다시 아시아로 퍼져나간 것은 당연하다.
축구가 있는 곳에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가 있는 곳에 축구가 있다. 축구는 억눌리고 억압된 감정을 분출하고 정치적 불만을 해소하며 사회적 욕망을 실현하는 축제였다. 축구는 개인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면서 뿌리 뽑힌 그들에게 집단적 기억을 제공하는 새로운 고향이었다. 돈으로 경기력을 사는 과도한 상업주의로 비판받고 있으나, 현대에도 축구가 기본적으로 지역 간, 도시 간 클럽 대항전 형태를 띠는 이유이다.
제국주의는 불타는 축구 열풍을 식민지배의 통로로 이용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축구를 통해 노동자들, 교사들, 군인들에게 남미, 아프리카, 남유럽 등 주변부 지역에 대한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자부심을 불어넣었고, 경기 때마다 이를 마음껏 표출하도록 자극했다. 이는 역으로 주변부 민중들의 강력한 분투도 촉발했다. 이들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긴 패스와 헤딩이라는 영국식 전술 대신 공 다루는 기술(중유럽), 개인기(남미)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축구 전술을 선보이는 등 축구를 진화시켰다.
축구는 공동체의 언어이고, 집단 정체성의 표현이다. 축구에는 한 민족의 역사적인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월드컵이 상징하는 축구의 세계화는 제국주의 확산과 식민지의 저항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축구에 대한 설명 없는 세계사는 불완전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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