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수목원 총성…하루에만 12마리 고라니가 사살됐다

최예린 2022. 12. 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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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멸종위기종이자 유해종…‘공존의 숲’이 해법될까
농수로에 빠진 고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탕! 탕! 탕!”

지난 10월17일 오전 10시. 조성희(49)씨가 들판에 울려 퍼지는 총성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씨는 국립세종수목원이 지척인 세종시 연기면 장남들에서 들지킴이로 활동한다. 멀리 보이는 수목원 안에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탕! 탕!” 총소리가 다시 들렸다. 조씨가 수목원에 전화를 걸어 따지듯 캐물었다. “총소리가 들리는데, 지금 고라니한테 총 쏘는 거 아닙니까?” 수목원 쪽은 “맞다. 오전 중에 끝낼 것”이라고 순순히 시인했다. 그날 세종수목원에서 포획(사살)된 고라니는 12마리였다.

수목원에서 사살된 12마리의 고라니

도심에 있는 수목원에서 고라니가 사살됐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세종환경운동연합과 장남들보전시민모임, 대전환경운동연합은 며칠 뒤 기자회견을 열어 “생명을 경시하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수목원을 성토했다. 수목원 쪽 요청으로 10여명의 엽사를 보낸 세종시청도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당황한 수목원 쪽은 “고라니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건 사실이고, 그동안 여러 노력을 했다”며 하소연했다.

실제 고라니는 2020년 7월 세종수목원이 문을 연 뒤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대규모 도시 개발로 갈 곳을 잃은 고라니들이 수목원으로 들어와 심어놓은 식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개장한 지 얼마 안 돼 어린 식물들이 많은 수목원 입장에선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고라니 기피제를 뿌리고, 소리·빛퇴치기도 설치해보고, 울타리에 그물망도 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목원은 고라니로 인한 재산 피해를 1억2480만원 규모로 추산한다. 무엇보다 수목을 심고 키우는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풀숲에 숨어 있던 고라니가 인기척에 놀라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죽했으면 ‘고라니 좀 잡아달라’고 시청에 민원을 넣었겠습니까?” 수목원 관계자의 목소리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멸종위기종과 유해야생동물 사이

고라니는 한반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포유동물 중 하나다. 사슴과로 뾰족한 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온 게 특징이다. ‘고라니’는 순우리말이지만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노루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집이 작아 ‘보노루’, ‘복작노루’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어금니노루’라는 뜻에서 ‘아장’(牙獐)이라고 하고, 영어권에서는 ‘물사슴’(water deer)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는데, 주로 습지나 농경지 주변, 평지와 산이 만나는 경계지역에 산다.

우리나라에는 흔하지만 사실 고라니는 전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만 사는데, 중국고라니는 개체수가 1만여마리에 불과해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울릉도, 독도 등 일부 지역을 빼곤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라니를 볼 수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진행한 야생동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1년 고라니의 전국 서식밀도는 1㎢당 7.4마리다. 최근 10년 새 큰 변화가 없다.

고라니는 한 번에 평균 3~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맹수 등 천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번식력까지 좋지만, 포획이나 로드킬(찻길 동물 사고) 등으로 죽는 고라니 수가 적지 않다 보니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국립생태원이 10월3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2021년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야생동물(4만3660마리) 가운데 67.8%(2만9349마리)가 고라니였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고라니는 포획(사살)이 가능한 ‘유해야생동물’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의한 유해야생동물은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이다. 환경부령은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고라니, 꿩, 멧비둘기, 멧돼지, 청설모, 두더지, 쥐류, 일부 오리류 등’을 유해야생동물로 정하고 있다.

덫에 걸린 고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법에 언급된 것처럼 고라니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이유는 ‘농작물 피해’ 때문이다. 농지와 도로 등이 늘고 서식지가 줄면서 고라니가 산에서 내려와 농작물을 먹거나 경작지를 망가뜨리는 일이 잦아졌고 농민들의 원성이 커졌다. 지자체는 ‘고라니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하면 포획단을 보내 고라니를 사냥한다. 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포획에 앞서 유해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등의 피해 상황과 동물의 수 등을 조사해야 하지만, 대개 포획은 ‘민원 해결용’으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이뤄진다. 세종시 관계자는 “농가 민원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포획단을 보낸다”며 “주변을 수색해 사살한 고라니들이 실제 농작물 피해를 준 고라니는 아닐 확률이 높겠지만, 농민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각 광역자치단체 통계를 취합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포획된 고라니 개체수는 2019년 18만2673마리, 2020년 21만5133마리, 2021년 16만2272마리였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된 총에 맞은 고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인위적 개체조절은 불가피하지만…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차에 치여 다친 고라니뿐 아니라, 총상을 입거나 사냥개에게 물려 도망치다 구조된 고라니도 들어와 있다. 상처가 깊은 고라니가 회복해 재활에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회복한 고라니를 다시 야생으로 보내는 일도 쉽지 않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농민들이 고라니에 민감하기 때문에 최대한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방생한다. 우연히 방생 장면을 목격하고 ‘그 웬수 같은 놈을 왜 풀어주느냐’고 돌을 던진 분도 있었다”고 했다.

농민에게도, 수목원한테도 ‘원수 같은’ 고라니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천적이 없는 상황인 만큼, 고라니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체계화된 계획 없이 민원에 따라 무분별하게 포획하는 지금의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문홍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야생동물은 보호의 대상이면서도 관리의 대상이다.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개체수가 너무 많은 종에 대해선) 솎아내는 관리가 필요한 면도 있다”면서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개체수 조절이든 포획이든 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관리 계획을 세우려면 한국 고라니의 습성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립공원연구원의 김의경 박사는 “지금 대부분의 야생동물 연구·조사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기는 멧돼지에 집중돼 있다”며 “전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고라니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깊고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풀숲에 숨어 어미를 기다리는 고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고라니와 공존하기 위해선 피해 농민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국립생태원의 김백준 박사는 “농작물 피해가 있는 지역은 농가에 고라니 방지 울타리를 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더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에 따라 지원책이 있는 곳도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생태관광을 통해 고라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 박사는 “고라니가 특히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고라니를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라니를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고라니숲, 공존 모델 될까?

12마리의 고라니를 사살한 수목원은 뒤늦게 “고라니와 공존 방안을 찾겠다”며 “수목원 여유 부지에 고라니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목원 밖의 2㏊ 땅에 ‘고라니숲’을 조성하고 수목원 안의 고라니를 그쪽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고라니숲은 고라니가 먹을 수 있는 식물들로 채울 방침이다. 권용진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사업부장은 “고라니와 공존 방안을 좀 더 고민하지 못하고 고라니를 포획한 것은 후회스러운 부분”이라며 “고라니숲이 고라니와 공존을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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