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 파업을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한 윤 대통령

기자 2022. 12. 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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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제정을 요구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소속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국회 앞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전방위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5일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불법 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북한 핵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듯 불법 파업으로부터 국가 경제와 민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북핵과 화물연대 파업을 비교한 것 자체가 무리다. 북핵은 당연히 용납되지 말아야 하고 또 제거돼야 할 위협이지만 파업은 일부 불편을 주더라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이다. 윤 대통령의 잘못된 노동관과 국민 편가르기가 유감스럽다.

윤 대통령이 두 사안을 함께 언급하며 “핵은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대북 정책을 펴왔다면 지금처럼 북핵 위협에 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핵과 화물연대 파업은 그 속성과 파급력이 전혀 다르다. 우선 북한의 핵 개발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진보와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포기시키는 게 목표다. 북핵 위협과 노동자 파업의 동일시는 북핵 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 전날 관계장관대책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라고 했다. 파업 과정에서 일부 법 위반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파업권 전체를 불법시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헌법 제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했다. 대통령이 오히려 법을 위반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이어받은 여당의 행태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총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을 향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했고,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했다. 또다시 케케묵은 색깔론을 동원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정부의 노동기본권 침해를 의심해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냈다. 법치를 표방하며 집권한 정부 때문에 노동후진국으로 낙인찍힐 판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강경 대응하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조짐을 보인다. 보수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편법은 국정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자세가 아닐뿐더러 의미 있는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노동자는 적대시하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권익을 보호해야 할 시민이다. 윤 대통령과 여권은 당장 반노동 행태를 접고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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