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소수인종 법적차별 없는데 배려는 위헌” 블룸의 신념 통할까
선거구 게리맨더링 획정訴 승리로 유명
블룸, 아시아계 집단소송 주도 ‘보수 투사’
“배려대상 피부색 따라 결정은 차별” 판단
보수 기운 연방 대법원… 상당수 ‘반대’ 밝혀
판결은 아직 안 나왔지만 ‘끝난 게임’ 인식
美 대학들 우대조치 방향성 포기 않을 듯
다른 요소 내세워 인종 구성 다양화 예상
앞의 글에서 블룸을 변호사라고 소개했지만,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변호사(lawyer)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그를 ‘리티게이터(litigator)’라 부른다. 물론 재판에서 리티게이터는 대부분 시험을 통과한 변호사가 담당하기 때문에 이를 소송 변호사, 법정 변호사라고 부르는 일이 일반적이지만 예외도 있다. 그 예외의 대표적인 사람이 블룸이다.
블룸은 미 중부 미시간주에서 좌파(left-wing) 성향이 강한 진보적인 유대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텍사스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텍사스와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고, 한때 서아프리카 문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사회에 나와서 그가 택한 직업은 주식 중개인이었다. 그런 블룸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30대였던 1980년대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진보적인 집안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보수주의를 접한 블룸은 자신이 사는 휴스턴 선거구에서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이 거듭해서 당선되는데 정작 공화당은 후보조차 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직접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기로 결정한다.
정치 초보였던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선거운동(미국에서는 후보가 유권자를 방문하는 선거운동이 허용될 뿐 아니라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을 하는 과정에서 왜 공화당이 이 선거구(텍사스 18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지를 깨닫게 된다. 문을 두드리는 집마다 흑인 유권자들이 나왔던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한데, 블룸은 자신이 출마한 선거구가 흑인 동네와 백인 동네를 가르는 선을 따라 정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행위)이었다.
흑인들만 골라내어 만든 18 선거구에서는 민주당만 당선되고, 이 선거구를 둘러싸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2 선거구에서는 공화당만 당선되는 식이기 때문에 블룸처럼 18 선거구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나 2 선거구에 출마하는 민주당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룸은 이 선거에서 참패한다.
그뿐 아니다. 현재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사실상 블룸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관 아홉 명 중 여섯 명이 보수 법관(그중 세 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기 4년 동안 임명했다)일 뿐 아니라, 상당수가 이미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반대 의견을 이런저런 기회에 밝힌 사람들이다. 특히 대법원에서 보수가 5대 4로 근소한 우위일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마저 인종에 기반한 우대 정책을 “더러운 작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6대 3으로 기울어진 현 대법원에서는 로버츠 대법원장의 캐스팅보트는 중요하지 않다.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다들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사안이 앨런 바키의 소송을 시작으로 대법원에 무려 6번이나 올라갔었고, 대부분 5대 4의 판결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는데, 그때마다 적극적 우대 조치를 살려낸 대법관은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중도보수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느 기자의 지적처럼 “이제 그런 대법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뛰어난 소송 변호사들이 그렇듯 블룸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제시한다. 대법원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아시아계와 백인 학생들은 다른 인종 학생들보다 더 높은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를 받아야 같은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공평한가?”와 같은 질문이 그것이다. 그 질문을 받고 단순히 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상식에 비추어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순간, 적극적 우대 조치의 폐지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SAT 점수는 20세기 초, 하버드와 같은 아이비리그 학교들이 동부의 부유한 백인 학생들 위주로 채워지는 것을 막고 입학을 ‘평등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하지만 학생의 경제적 수준과 SAT 점수의 상관관계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또 하나의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곧 나오게 될 대법원의 적극적 우대 조치 위헌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아예 SAT와 같은 표준화된 점수를 입학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에 시험 장소를 구하기 힘들어 점수 채택을 포기했지만 이 기회에 아예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표준화된 점수가 없으면 인종차별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학교들이 적극적 우대 조치의 방향성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그만큼 다양성의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를 내놓고 인종을 앞세워서 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선발해서 결과적으로 학생의 인종 구성을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조치를 1990년대에 불법화했던 캘리포니아에서도 대학들이 결국 10년 만에 다른 방법을 사용해 인종 다양성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좋은 선례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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