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주입한 고아에 대한 편견들

한겨레 2022. 12. 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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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1997년작 엠비시 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 <한겨레> 자료사진

[숨&결] 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사춘기가 심하게 왔던 중학생 시절, 주말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다. 채널을 돌려가며 평일과 주말 드라마를 섭렵하고 나니 나중에는 드라마 첫 회만 봐도 등장인물의 앞날을 대강 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드라마 주인공 가운데에는 유독 출생의 비밀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보통 부잣집의 숨겨진 자식이거나 아이가 바뀌어 보육원에 맡겨진 케이스인데, 대개 내용은 이랬다. ‘주인공은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입양된다. 양부모에게 구박받으면서도 고군분투 열심히 살아 대기업에 들어간다. 훗날 성공해서 친부모를 찾아보니 주인공이 다니고 있는 회사 회장이었다.’ 출생의 비밀이 반전 요소로 쓰이며 주인공은 행복해지고 드라마는 끝난다.

얼굴도 모르는 나의 부모를 상상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나의 불쌍한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고쳐주기 바랐다. 일기장에 적기도 했다. ‘어느 날 보육원 입구로 검은 세단 차가 올라온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친부모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애타게 찾는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 탄다. 진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그러나 상상이 무색하게도 내게 인생의 반전은 없었다. 나중에는 그런 헛된 희망을 갖게 하는 드라마에 진절머리가 났다.

드라마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보육원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들이 튀어나왔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고아 새끼야”, “지는 갈 데 없어서 보육원에 온 주제에”, “너는 친부모도 모르는 ‘생고아’잖아”.

같은 보육원에 사는 처지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더 상처 주기 위해 어디선가 주워들은 모진 말을 주고받았다. 싸움을 말리러 온 보육원 선생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휴, 지겨워.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면 안 된다니까.”

이런 날카로운 말들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상처가 됐다. 우린 모두 보육원에 사는 고아였고, 누구 하나 그런 모진 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뾰족한 말들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로 생각하게 했다.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내 안에서도 쌓여갔다. 특히 보육원 퇴소 뒤 자립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편견은 나의 발목을 잡았다. 힘든 일이 생겨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웠고, 자주 자신을 탓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보다 더 악착같이 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고, 보육원 출신이라는 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았다.

보육원에서 나온 지 7년이 넘어가는 지금, 이제는 안다. 사회에는 보육원 출신 청년에게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아무런 편견이 없는 사람도 많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어려움을 털어놓으니 선뜻 도움을 주는 이들도 많았다. 세상에는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설 때 세상은 내게 여러 기회를 보여줬다.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고아에 대한 편견과 스스로에 대한 미움은 진짜 세상을 만나며 차츰 사라지는 중이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후배들과 지금도 자립하고 있을 친구들을 위해,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제안드리고 싶다. 보육원 아이들을 작품에 쓰고 싶다면 쉽게 장담하며 그리기보다는 일단 있는 그대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이다. 대사 한줄, 자막 한줄이 누군가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콘텐츠는 진부한 스토리의 작품보다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심한 배려들이 모인다면 드라마에 여전히 반복되는 무수한 차별의 장면들이, 당사자들이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들이 조금씩 깨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깨진 조각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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