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 청장의 언론활용법

김양혁 기자 2022. 12. 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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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혁 기자

“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떨어져서 걱정이다. 언론에서 접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다”.

제7차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장관급 회의 첫날이던 지난 11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의 한 접견실. 백경란 질병청장이 행사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저조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현장에서 백 청장의 고민을 듣던 인물은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인 김강립 연세대 특임교수였다. 김 교수 역시 “과거(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언론이) 그랬다”며 상황을 다 이해한다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현직 방역 책임자들인 두 사람이 낮은 코로나 백신 접종률의 원인을 언론에 돌리고 있는 사이 백신 추가 접종률은 더디지만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30일 0시 기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동절기 추가접종 접종률은 20.2%를 기록했다.같은 기간 요양병원, 정신건강 증진시설, 노숙인 시설 등 감염 취약 시설 이용자와 거주자, 종사자의 접종률은 25.5%로 나타났다. 전달과 비교해 60세 이상 접종률은 12.7%p(포인트) 늘었고, 감염 취약 시설은 21.4%p도 올랐다. 지난 10월 11일 동절기 추가접종 시작 이후 50일 만이다.

방역 당국 수장으로서 더딘 접종률에 대해 얼마나 부담을 느낄지 충분히 공감은 된다. 겨울철에 접어들며 기온이 떨어지면서 인플루엔자(독감)까지 유행하는 ‘트윈데믹’ 우려는 방역 관계자들의 조바심을 더욱 키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방역 책임자가 느린 백신 접종 ‘속도’에 대한 책임을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에게서만 찾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백신 접종을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맡기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민들은 자율적으로 백신을 맞고 있다. 백신 접종에 대해 언론 탓만 하기 전에 더 명확한 원인을 짚어야 한다.

백신 접종률 증가가 더딘 이유는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대다수 국민들은 2020년부터 3년 가까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겪으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백신을 맞고도 재감염되는 사례가 적잖게 나타나고, 사실상 백신이 새 변이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백신 무용론의 유혹’에 귀기울이게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전임 정부가 백신 접종률을 올리겠다며 무조건적으로 적용한 방역패스도 반감을 부추기는데 일조했다.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코로나19 인식조사는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절기 추가접종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65%로 국민 10명 중 7명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접종에 부정적인 이유를 살펴보니 백신 접종 후 재감염이 34%로 가장 많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보다 접종 이상 반응이 더 걱정된다는 답변이 28%로 나타났다. ‘백신보다 2가 백신의 이상 반응이 더 클 것 같아 걱정된다’라는 답변이 22%, ‘코로나19에 걸렸다 완치돼 맞을 필요가 없다’가 21%로 나타났다. 이는 자신이나 주변인을 통해 획득한 학습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백 청장이 언론을 책임 회피 목적으로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언론을 책임 회피 목적으로 써먹었다. 백 청장은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숨진 10대 청소년 사례를 들며 질병청이 ‘접종 전 발병 가능성이 있다’고 했냐고 묻자 “언론에서 봤다”고 답해 여야 의원의 질타를 받았다.

질병청은 청 출범 이전인 본부시절부터 정통 관료가 아닌 전문가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엘리트 집단’이 주도하고 있는 보기 드문 행정조직이다. 백 청장 역시 의사 출신이다. 백 청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6월 행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외부의 지적을 받아들인 일이 있다. 병원에서만 일을 하다 보니 높은 책임감이 필요한 공직을 맡은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일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맡은 일이 익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역 수장의 역할이 눈 앞의 책임을 피하려고 특정 집단을 탓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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