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조선 붕당정치 재현되는 정치판

2022. 12.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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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고 죽으며 한 조정에서 벼슬하고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평생토록 왕래가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성호선생문집'에 남긴 말이다.

이처럼 16세기 후반 학맥을 기반으로 탄생한 붕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폐해가 두드러졌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등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유교적인 절제와 공론은 균형을 잃어갔다. 붕당 간 견제와 비판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상대 당파에 대한 박해와 보복만 반복됐다. 이른바 '붕당정치'의 파탄이었다.

대외정책의 패착으로도 연결됐다. 반정을 일으켜 북인과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들은 명분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외교 노선을 잘못 설정했다. 광해군의 명나라와 후금 사이 중립외교 정책을 반정의 명분으로 삼은 만큼 대외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후금의 집요한 요구와 위협에도 명나라의 '숭정(崇禎)' 연호를 계속 사용하며 명나라에 대한 사대관계를 거듭 다짐했고, 척화론(결전론)과 주화론(유화론)을 두고 다툼을 벌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후금은 두 번에 걸친 대대적인 군사 침입으로 응수해왔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다.

결국 조선시대에도 붕당에 대한 심각한 비판과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1671년 정언 윤계는 현종에게 "붕당이란 국가 백년의 고질"이라고 상소했고, 1729년 참찬관 김시환은 영조에게 "조정은 장차 당론(黨論) 때문에 망하고, 소민(小民)들은 장차 군역(軍役) 때문에 망하게 됐다"고 아뢸 정도였다.

현대 정치도 조선과 다르지 않다. 요즘 정치권도 조선시대 붕당정치처럼 배제와 독단, 증오와 독설만 가득하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야당 모두 각자의 길만을 간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야당 지도부를 만난 적이 없다. 자신과 불편한 관계의 언론사를 해외 순방길에 배제하고 도어스테핑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대선 후보 시절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풍자는 이 프로그램의 권리"라고 말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없다. 야권의 비판과 반대에 상당히 날이 서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검찰은 전 정권과 거대 야당의 대표를 둘러싸고 수사도 벌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며 집권당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그저 대통령의 눈치만 보며 끌려 다니는 듯이 보인다. 어느덧 윤심(윤석열 대통령이 의중)이 정치의 척도가 된 모양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보다 강성 지지층을 향한 정치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윤석열 정부와 정당에 대한 공세가 본질보다 자극적인 이슈에 집중되고 있다. 거짓말로 드러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술자리에 대한 김의겸 대변인의 의혹 제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의원들은 취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탄핵과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불과 9개월 전에 내려진 국민의 선을 수용할 수 없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현대의 여야가 조선시대 붕당처럼 끝을 모르게 다투는 동안 200조에 달하는 민생예산은 집행되지 못할 우려에 처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간 극심한 다툼으로 국회가 회계 연도 개시일(1월 1일) 전까지 예산을 확정하지 못하면 당해 연도 예산을 전년도에 준해 집행하는 '준예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정부 예산안 639조 원 중 약 280조 원의 지출이 막히고, 어린이집 보육료와 장애인 지원, 일자리 창출 등 서민에게 필요한 돈은 지원하지 못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도 요원한 상태다. 여야는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파면문제를 고리로 정쟁만 일삼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진행되는 국정조사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참사 유가족들이 국회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 붕당이 외교 참사를 가져온 것과 여야의 극단적인 다툼이 민생 참사를 가져오는 모습이 상당히 닯은 꼴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명은 발전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전근대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이견을 좁히고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모습 역시 닮은 꼴이다. 국회에서 20여년 간 근무하고 있는 한 보좌관의 말이 와닿는다. "이전에는 여야가 카메라 앞에서만 싸우고 뒤에서는 타협안을 모색했지만, 지금은 화해없이 진짜 원수가 된다." 앞서 언급했던 성호 이익이 남긴 말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 일까.

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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