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핫한 나라"… BTS·오겜·치맥에 빠진 스웨덴 [북유럽 리포트]
"BTS 넘어 잔나비·혁오 등 선호 음악들 다양해져"
‘오징어게임’ 빅히트 치며 ‘2차 한류 웨이브’ 불어
K팝 커버댄스도 인기… 8000명 활동하는 동호회도
"가장 관심 있는 한국문화" 한식도 한류열풍 합류
9월 스톡홀름에 문연 치킨집, 줄서서 먹는 맛집으로
【파이낸셜뉴스 스톡홀름(스웨덴)=박소현 기자】 "BTS를 좋아하는 친구 영향으로 2018년부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K팝이나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이 정말 많아요." 올해 스무살인 마리아 몰드릭스씨는 수준급의 한국어로 자신이 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지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스톡홀름 한국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마리아는 "과학적인 언어인 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문법과 어휘가 어려워서 중급, 고급 레벨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도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재밌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한국에 있는 어학당에 다녔는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리아씨처럼 스웨덴에서 한글을 배우는 스웨덴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K팝, K드라마의 글로벌 유행에 힘입어 K컬처인 한국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스톡홀름대 한국학과 가브리엘 욘손 교수는 2009년 이후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학과 입학생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30명에 불과했던 입학생은 지난 2020년 약 100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는데, 특히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학에서 온라인 강좌를 열기 시작하면서 입학생이 크게 늘어났다. 욘손 교수는 "신입생이 100명 넘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전체적으로 150명이 넘는다"면서 "스웨덴에서는 스톡홀름대에서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데 온라인 강의를 시작하면서 스톡홀름에 살지 않는 학생 약 20%가 강의를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와 비교해서는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학생이 줄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생긴 스웨덴 학생들이 증가했다고 부연했다.
스톡홀름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비영리기관 재스웨덴한국학교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왔다. 재스웨덴한국학교 김혜숙 이사장은 "지난 10년의 변화를 돌이켜보면 성인반의 변화가 가장 크다"면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스웨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성인 중급반을 3년 넘게 가르치는 정다원 선생님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니즈가 확실히 많아졌다"면서 "K팝이 아니라도 잔나비, 혁오 등 좋아하는 음악이 다양해졌고 알려주지 않아도 한국 문장을 반복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찾아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반에는 고등학생이 3분의 1 정도 되는데 한국에서 고등학생이 이렇게 취미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학교에서 만난 에릭군(16)도 친구의 추천으로 한글을 공부 한지 열달째다. 에릭은 "한글은 3~4시간 정도 공부하면 될 정도로 아주 쉬운 첫 인상을 받았다"면서 "한국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서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에릭은 함께 중급반에서 공부하는 마리차씨(55)와 톡투미(Talk to me), 아이토키(italki) 등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할 때 즐겨 사용하는 앱을 줄줄이 읊으면서 "한국어를 배운 이후 한국 드라마 보기가 편해졌다. 가끔 '넷플릭스가 왜 저렇게 번역했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류 2차 웨이브 부는 스웨덴
이들은 스웨덴에서 현재 한류 2차 웨이브가 불고 있는 것 같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이 스웨덴에서도 이제는 보편화됐고 지난해 전세계를 주름잡은 '오징어게임'은 스웨덴에서도 빅히트를 치면서 "한국은 핫하다"는 인식이 스웨덴 10대 사이에 퍼졌다는 것이다.
김혜숙 이사장은 "BTS가 뜨면서 딸 친구들이 "와 너 한국어 할 줄 알아? 멋있다"라고 하거나 먼저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한다"면서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딸은 친구에게 하루에 한 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 아이들에게 '한국은 패션, 음악 등 핫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놀라워했다. 스웨덴 내에서 한국문화가 급부상하면서 한국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에릭은 "BTS 인기가 커질수록 K팝이 스웨덴에 보편화됐다"면서 "솔직히 나와 어울리는 10대 남자들은 K팝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난해 '오징어게임'이 빅, 빅, 빅히트를 치면서 지금 스웨덴에서 한류 2차 웨이브가 불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K팝 커버댄스가 스웨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K팝 커버댄스 교실을 운영하는 'K팝 논스톱' 동호회의 회원수는 8000명이 넘는다. 이 동호회는 K팝 쇼케이스를 열 정도다. 수준급의 K팝 커버댄스로 스웨덴 K팝 댄스 경연대회에서 1위를 거머쥔 '언니바이브'는 스웨덴 남부지역에서 회원수 약 600명의 K팝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최근 재스웨덴한국학교에서 열린 37주년 기념 행사에도 10대 커버댄스 그룹 '오로라'가 무대에 올랐고, 지난 5월 '2022 퀴즈온 코리아-스웨덴 예선전'에서도 스톡홀름의 작은 BTS로 불리는 엘리아스 파노우군이 BTS의 '봄날'을 부르고 '쩔어'에 맞춰 춤을 추면서 행사장 분위기를 한껏 달구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도 '치맥' 열풍
K드라마, K팝 등의 영향으로 10대 사이에서 한국어 배우기가 열풍이라면 스웨덴 사람들이 세대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한국문화는 K푸드, 바로 한식이다.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이 지난해 8월 발간한 '스웨덴 국민의 문화 향유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스웨덴 사람들이 관심 있는 한국문화 1순위로 음식이 올랐다.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은 스웨덴 설문조사 업체 IPSLS에 의뢰, 지난해 4월 스웨덴 21개 주에 사는 4만5000명의 패널 중 무작위로 추출한 스웨덴 국민 81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 중 234명이 음식이라고 답할 정도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관심 있는 한국문화 선택지를 5개로 넓혀도 1위는 음식(450명)이었다. 문화유산(288명), 건축(284명), 공예(233명), 영화(178명)가 뒤를 이었다. 이미 응답자의 과반 이상인 426명(52.2%)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폭넓게 한국 음식을 접하면서 K푸드가 스웨덴 국민에게 한국 문화를 대표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K푸드를 재경험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540명(66.2%)에 달했다.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세대는 30대(72.5%)와 50대(70.6%)였다.
실제 스웨덴에도 한국 치킨을 파는 최초의 치킨집 '몬스터 치킨'이 지난 9월 문을 열었다. 스웨덴에서도 치맥을 즐길 수 있다는 소식이 현지에 빠르게 퍼지면서 오픈 첫날부터 몬스터치킨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는 등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치킨집이 스웨덴 내 한인사회에서 더 이목을 끌었던 이유는 손님의 90% 이상이 현지인이라는 점이었다. 지난 3일 스톡홀름 쇠데르말름에 있는 몬스터치킨을 방문하니 오후 5시에도 이미 만석이었다. 몬스터치킨을 공동창업한 대표 푸다씨는 "우리 치킨집은 4명의 동업자가 함께 만들었는데 최초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스톡홀름에서 한국 회사에 다녔던 한국인"이라면서 "다만 한국은 치킨을 통째로 튀기는데 여긴 주방이 작아서 그럴 수 없어 메뉴를 뼈없는 순살치킨이나 윙으로 통일했다"고 설명했다. 푸다씨는 "즐겨찾는 손님 중 60~70%는 아시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식이 스웨덴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유튜브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스톡홀름 북쪽 테비 센트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한스씨는 "한식을 정말 좋아해서 스톡홀름에 있는 한식은 다 먹어봤다"면서 "유튜브에서 매일 한국에 여행 간 외국인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에 가는 꿈을 꾸는데,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 식당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내년 2월 개원을 준비 중인 스웨덴 한국문화원도 이 같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기 위해 한국음식, 한국어 등 다양한 문화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주 스웨덴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식, K팝, 태권도에 수요가 많다"면서 "한식은 문화원에서 가능할 것 같고 K팝, 태권도는 공간 문제로 외부 기관과 협업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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