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 <7>] 초변신 사회, 심리학을 알아야 살아남는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마리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1916년에 발표한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한숨 더 자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잊어버리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벌레의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고 직장 상사를 만나면서 곤혹스럽고 참담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모두 가상의 이야기다.
카프카의 ‘변신’은 무슨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 인간은 내면에 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 벌레로 변신했더니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가족조차 차갑게 외면한다는 점, 자신의 본래 모습과 본심을 알리려고 노력할수록 소통이 안 되고 더욱 어려운 상황과 마주한다는 점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정체성 혼동과 소통 불가의 장벽 앞에 마주 선 인간의 고통을 그려낸 탁월한 심리소설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새삼 떠올리게 한 일이 2009년에 나타났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였다. 낯선 외계 종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집어넣고 원격 조종하는 놀라운 초변신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과연 꿈과 현실이 융합된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것인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결국 이런 세상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이 ‘그레고르 잠자’가 되고 있다. 가상현실(VR)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누구나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초변신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이미 가상인간을 광고 모델로 써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생기고 아예 가상인간에게 사원증까지 발급해 근무시키는 기업도 있다. 지난해 신한라이프 광고에 등장한 국내 최초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열광시키며 맹활약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가상인간은 2016년에 탄생한 19세 가수 릴 미켈라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얻자 샤넬, 삼성전자 등과 협업해 연간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12월 14일 ‘아바타’ 속편이 개봉한다. 외계 종족 나비족으로 변신한 주인공 가족이 이들과 힘을 합쳐 생존을 위한 투쟁과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완전한 초변신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인간도 가상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상세계 속에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일하고 놀며 살아간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가상세계 속의 자기가 진짜 자기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이질적 연결이 폭증하면서 소통·이해·공감이 어려워지고 불신·불안·갈등·소외·분노가 커지게 된다. 게다가 가상현실까지 융합되고 있으니 편리함의 이면에 불안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무의식과 꿈도 분석해 낸다. 본격적인 심리학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테크 기업의 인공지능(AI) 개발자들 옆에는 심리학 전공자들이 앉아서 협업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높은 기술이라도 사람들이 싫어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들이 좋아할지 싫어할지를 찾아내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한다. 그래야 성공하는 세상이다.
2021년 고려대 문과대학 심리학과가 국내 대학에선 처음으로 ‘심리학부’로 확대 개편됐다. 단과대 수준이다. 이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심리학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심리학이 문과가 아니라 문과와 이과가 합쳐진 융합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이나 임직원의 마음은 고사하고 내 마음도 제대로 알아내기 어려운 초변신 사회다. 심리학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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