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열풍에 바닥난 당뇨 신약...“환자는 어쩌라고”

이병철 기자 2022. 12. 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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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형 당뇨병 약 오젬픽, 체중감량 효과 있어
해외서 다이어트 약으로 오남용 심각
정작 필요한 당뇨병 환자들은 처방 못 받아
픽사베이

제2형 당뇨병 약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던 오젬픽이 전 세계에서 품귀 현상으로 판매에 차질을 빚으면서 정작 당뇨병 환자들이 처방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오젬픽 다이어트’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물량 부족 사태로 내년으로 예정된 오젬픽의 국내 출시가 미뤄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오젬픽은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제2형 당뇨병 약이다. 지난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첫 허가를 받았다. 오젬픽의 유효성분은 인체 호르몬인 GLP-1 유사체(비슷한 기능을 하는 합성 물질)인 세마글루타이드다. GLP-1은 식사 후에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의 분비를 억제해 식사로 높아진 혈당 수치를 조절하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기능을 한다.

당뇨병으로 혈당 수치가 올라가면 말초혈관질환, 관상동맥질환을 포함하는 모든 심혈관 질환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진다. GLP-1 계열 당뇨병 약은 이런 합병증에도 효과가 크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오젬픽을 투약한 환자에게서 심혈관 합병증 26%, 신장 합병증 36%를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제2형 당뇨병 약 오젬픽. /노보노디스크

오젬픽이 혈당을 낮추고 합병증에도 효과가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에서는 오젬픽을 당뇨병 약의 ‘게임 체인저’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젬픽은 국내에서 심혈관 합병증 치료에 쓸 수 있는 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대한당뇨병학회도 지난해 당뇨병 치료지침을 개정하면서 심혈관 질환이나 신장 질환을 동반한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GLP-1 유사체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원규장 영남대 의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지난 5월 25일 오젬픽의 국내 허가를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GLP-1 유사체는 임상실험에서 당뇨병의 주요 합병증의 하나인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을 낮추는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제조사가 내년 중에 오젬픽을 국내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국내 환자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GLP-1 유사체가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다이어트 목적으로 처방 받는 사례가 최근 늘면서 국내 출시가 지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오젬픽이 출시된 각국 정부에서는 물량 부족으로 오젬픽의 처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등 해외 당뇨병 환자들은 약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와 미국 모델 겸 배우 킴 카사디안 같은 유명인들이 SNS를 통해 오젬픽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온라인에서 ‘오젬픽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틱톡에 올라온 관련 게시물만 3억 건 이상이다. 오젬픽과 같은 성분으로 비만 약으로 허가 받은 위고비가 있지만, 품귀 현상으로 물량을 구하기 어렵고 가격도 오젬픽보다 50% 가량 비싸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GLP-1 유사체를 처방받으려는 수요가 오젬픽으로 몰리면서 노보노디스크는 “오젬픽은 비만 약으로 허가받지 않았고, 위고비와는 다른 약”이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여전히 물량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FDA는 오젬픽을 ‘현재 부족한 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호주 연방의료제품청(TGA)은 내년 3월까지 오젬픽의 판매가 중단될 것이라고 공지하며, 오젬픽 처방을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을 함께 공지한 상황이다. 영국에서는 한 차례 판매 중단 후 지난 10월 오젬픽 판매를 다시 시작했지만, 내년 1월까지는 기존에 처방 받은 이력이 있는 환자에게만 공급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3월이 지나야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틱톡에는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이용한 다이어트 게시물이 3억개 이상 올라와 있다. /틱톡 캡처

의료계도 오젬픽의 물량 부족 현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디샤 나랑 미국 노스웨스턴레이크포레스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최근 비만 환자들이 오젬픽을 비인가로 처방 받아 허가 없이 복용하는 사례가 흔하다”며 “정작 당뇨병 환자들은 오젬픽의 물량 부족으로 처방 받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닐 샤 미국 텍사스대 맥고번의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의료 윤리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오젬픽을 처방하는 의사와 환자들은 당뇨병 환자의 입장을 고려해 이제는 멈춰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물량 부족 문제가 심해지는 만큼 내년으로 예정된 오젬픽의 국내 출시가 미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내분비내과 전문의는 “국내에도 오젬픽 처방이 필요한 환자가 많지만, 현재 해외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국내 출시도 미뤄질 수 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당뇨병학회이 발간한 ‘2022년 당뇨병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는 2020년 기준 527만명에 달한다. 그중 인슐린의 분비와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전체 당뇨병의 90%를 차지한다. 하지만 제2형 당뇨병은 인슐린의 분비는 물론 받아들이는 기능에도 이상이 생겨 인슐린의 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적으로 치료가 어려워 합병증을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노보노디스크는 해외에서의 물량 부족 사태가 국내 출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보노디스크 관계자는 “해외에서 오젬픽의 품귀현상으로 국내에 출시가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국내에는 내년 중에 오젬픽을 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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