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스마트폰되는 기막힌 상상, 웹툰이라 가능"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2. 12. 5.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을 잠금해제' 박성현 작가

"저는 스마트폰으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허무맹랑한 글 하나가 이용자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10분 전 숨을 거두고 영혼이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산 속에서 구조를 기다린다는 호소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용자들은 소설 같은 내용에 무미건조한 말투의 글쓴이를 소위 '관심종자'로 취급하며 무시했다.

스마트폰을 발견한 사람은 취업준비생 6년 차 29세 박인성. 어느 회사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산을 누비다 방전 직전인 스마트폰을 줍는다. 스마트폰은 자신이 유명 게임회사 '잭슨' 대표인 서른아홉살 김선주이며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의 부탁 몇 가지만 들어주면 사례로 통장에 든 100억원을 모두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과연 인성은 스마트폰 속에 갇힌 선주를 현실로 돌려놓고 사례금을 받을 수 있을까.

웹툰 '사장님을 잠금해제'는 박성현 작가(30)가 지난해 중순까지 약 1년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한 작품이다. 인성이 스마트폰 속 선주와 힘을 합쳐 잭슨을 장악하려는 무리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스릴러를 기본으로 특유의 유머를 적절히 섞으면서 읽는 재미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이 스마트폰이 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박 작가가 평소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습관에서 비롯됐다. "그냥 막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써둔 거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구상하다가 그 기록들을 보니 이게 만약 누군가에게 보여졌을 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짤막한 만화를 그리며 웹툰 작가를 꿈꿔온 박 작가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약간 무모한 타입이에요. 주변에 만화가가 될 거라고 습관처럼 말하고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죠. 당시에 만화를 하려면 무조건 일본에 가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일본 만화계는 예전에 제가 애독하던 때랑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은 웹툰 작가가 된 걸 다들 좋아하시지만, 그땐 그만하라고 했었어요. 돈벌이 못한다고요."

드라마 '사장님을 잠금해제'(왼쪽)의 방영을 앞두고 박성현 작가가 그린 원작 웹툰 축전. 【사진 제공=ENA】

2018년 웹툰 '냥하무인'으로 데뷔한 박 작가는 두 번째 작품인 '사장님을 잠금해제'가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개그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웹툰 특유의 시스템에서 매번 부족한 틈을 채워가고 있다. "어떤 독자 분께서 제 작품은 저 혼자 드립(농담)을 다 쳐서 정작 독자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웹툰이라는 게 한 주에 한 회씩 연재하면서 독자들과 작가가 소통해서 만들어가는 요소도 분명 있거든요. 너무 개그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하는 계기였어요."

이 작품은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됐다. "가끔 해외 독자 분들 반응을 받아보면 제가 생각한 웃음 포인트를 그대로 이해해주시거든요. 나라마다 웃음 코드가 다를 것 같은데 재밌게 봐주시니 신기하죠.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감사하고요."

이 작품은 ENA 채널에서 12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7일부터 방영된다. 드라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해외에서도 방영된다. "제가 작품에 무리수를 많이 뒀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얘길 듣고 처음에는 놀랐죠.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드라마를 보시고 또 원작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데 힘이 되거든요."

[박대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