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고위 관리 “국가보안법 재판 중국 본토로 넘겨야”
홍콩의 고위 관리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따라 기소된 이들이 현지에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면 중국 본토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콩보안법을 위반하면 홍콩이 아니라 중국에서 재판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일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홍콩 유일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 탐유충(譚耀宗)은 전날 TVB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홍콩보안법 위반 관련 재판에서 외국인 변호사들이 변론을 맡지 못하게 하고, 피고인들이 현지 변호사도 구하지 못한다면 해당 재판은 중국 본토 법원에서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은 현재 외국인 변호사가 홍콩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해둔 상태다.
홍콩의 관습법 제도에 따르면 현지에서 법정대리인을 구하지 못하면 외국인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길 수 있다. 하지만 탐 위원은 홍콩보안법이 민법 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관습법과 별개라는 입장이다. 또 그는 홍콩보안법 위반자들을 본토 법원으로 보낼 수 있는 법적 요건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홍콩보안법 55조에 따르면 외국 세력이 개입했거나, 홍콩 정부가 효과적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거나,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있으면 중국 중앙정부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을 대리할 현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국은 왜 현지 변호사들이 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하는지 알아야 한다. 외세의 개입으로 사건이 지나치게 복잡한 것일 수 있다”며 “그런 경우엔 해당 사건을 본토로 이송하자”고 말했다.
탐 위원은 나아가 홍콩보안법을 위반한 피고인을 대리하기 위해 오는 외국인 변호사들의 취업 비자 발급이나 갱신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출입국 관리소장이 비자 발급이나 연장을 거부함으로써 외국인 변호사들이 홍콩 법정에 설 기회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탐 위원의 발언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앞둔 지미 라이 전 빈과일보 사주(74)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사주였던 라이는 홍콩보안법상 외세와 결탁하고 선동적인 출판물을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달 시작되는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 영국인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에 홍콩 법무부는 홍콩보안법 사건에는 외국인 변호사가 참여할 수 없다며 고등법원에 이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외국인 변호사 선임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대법원 격인 종심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했으나 종심법원 역시 이를 기각했다.
이후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28일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외국인 변호사가 국가 안보 관련 사건에 관여할 수 있는지 해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중국 당국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라이의 재판이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리 장관의 발언 후 지난 1일 라이의 재판 일정은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것으로 수정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홍콩보안법 위반자들이 본토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홍콩대학 법학부의 요하네스 찬 겸임교수는 “만약 피고인이 홍콩에서 본인을 대리할 현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다 해도 홍콩 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진 않는다”며 이는 홍콩보안법 55조가 규정하는 요건이 아니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그는 법원이 외국인 변호사의 법정 출두를 허용했다면 이민 당국이 비자를 거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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